내가 만든 조합이 신제품으로?…Z세대가 키운 ‘내시피’ 신드롬

내가 만든 조합이 신제품으로?…Z세대가 키운 ‘내시피’ 신드롬

기사승인 2025-09-23 06:00:14
지난해 8월 ‘오늘 뭐먹지?’ 틱톡 계정에 올라온 ‘닥터페퍼 제로 피클팝’ 관련 게시글 캡처. 이예솔 기자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 화제가 된 ‘꿀조합’ 레시피가 더 이상 단순 유행에 머무르지 않고 실제 신제품 출시로 이어지고 있다. 소비자 취향과 호기심이 곧바로 상품 개발로 연결되면서, 업계는 한 차례 검증된 입맛을 적극 신제품 라인에 반영하는 전략을 내세우고 있다.

23일 식품업계에 따르면, 버거킹은 해외 틱톡에서 유행한 ‘닥터페퍼+피클’ 조합을 응용해 ‘닥터페퍼 제로 피클팝’을 지난달 선보였다. ‘닥터페퍼 피클’은 달콤한 체리향 탄산음료 닥터페퍼에 짠맛의 피클을 넣어 마시는 방식으로, 미국에서 밈처럼 번진 이색 레시피다. 지난해 한 틱톡커가 매장에서 “피클을 넣어 달라”고 주문한 영상이 900만 회 이상 재생되면서 입소문을 탔다. 

틱톡커와 인플루언서들이 앞다퉈 관련 영상을 올리면서 열풍은 더 커졌고, 가수 산다라박과 이채연 등 셀럽들이 합류하자 국내에서도 화제가 됐다. 이후 다양한 레시피와 챌린지로 번지며 닥터페퍼 품절 사태까지 일으켰다. 버거킹이 이를 메뉴로 구현하자 다소 낯선 조합임에도 젊은 소비자들에게 호응을 얻었다. 단순한 이색 상품을 넘어 실제 소비자 문화를 반영한 사례로 평가된다. 

써브웨이가 같은 달 초 내놓은 ‘타코 샐러드’도 온라인에서 화제가 된 조합을 정식 메뉴로 옮겨온 사례다. 앞서 기존 샐러드에 또띠야를 곁들여 타코처럼 먹는 방식이 SNS에서 ‘꿀조합’으로 불리며 주목받았다. 이 메뉴는 정식 출시 직후 예상치를 훌쩍 뛰어넘는 판매량을 기록하며 조기 소진됐다. 출시 일주일 만에 목표치의 네 배 이상 팔리며 한정판 샐러드 중 최고 실적을 올리기도 했다. 

GS리테일이 운영하는 편의점 GS25가 출시한 ‘얼박사’. GS리테일 제공

편의점 업계도 이러한 흐름에 올라탔다. GS25는 지난 6월 대학가에서 화제를 모은 혼합 음료 조합을 상품화해 ‘얼박사’를 출시했다. 얼박사는 6~7년 전 SNS에서 ‘편의점 꿀조합’으로 불리던 음료로, 소비자들이 피로 회복이나 숙취 해소를 위해 박카스와 사이다를 얼음컵에 섞어 마시던 방식에서 시작됐다. 학생과 직장인을 중심으로 꾸준히 찾는 사람이 많았던 조합이 마침내 완제품으로 나온 셈이다.

GS리테일과 동아제약이 공동 개발한 얼박사는 출시 두 달 만에 누적 판매량 250만 개를 돌파하며 음료 카테고리 매출 1위에 올랐다. 실제 대학가 인근 GS25 120개 점포를 분석한 결과, 지난 1~7일 일주일간 얼박사 매출은 전월 같은 기간보다 197.7% 늘었다.

이처럼 소비자 조합이 상품으로 이어지는 현상은 비단 새로운 흐름만은 아니다. 과거에도 삼양식품 불닭볶음면의 변주가 있었다. 소비자들이 매운맛을 완화하기 위해 불닭볶음면에 치즈를 넣어 먹거나 크림소스를 곁들여 먹던 방식이 온라인을 중심으로 인기를 끌자, 삼양은 이를 반영해 치즈불닭볶음면, 까르보불닭볶음면 등을 공식 출시한 바 있다. 2018년 5월 정식 제품으로 출시된 까르보불닭볶음면은 불닭브랜드 대표 제품으로 자리 잡았다. 

2020년 출시된 오뚜기의 크림진짬뽕도 비슷한 사례다. 진짬뽕에 우유를 넣어 먹는, 이른바 ‘크뽕’ 레시피가 온라인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퍼지자 오뚜기가 이를 제품으로 내놓은 것이다. 소비자 유행이 기업 제품으로 연결된 대표적인 예로 꼽힌다.

과거 일부 실험적 시도로만 여겨졌던 이 같은 사례는 이제 업계 전반으로 확산했다. 소비자들은 더 이상 단순한 구매자가 아니라 아이디어 제공자의 역할을 하고 있다. 식품업계 한 관계자는 “내시피 열풍이 앞으로도 신제품 개발 과정에서 중요한 동력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예솔 기자
ysolzz6@kukinews.com
이예솔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