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으로의 초대] 최금희의 그림 읽기(85)

[인문학으로의 초대] 최금희의 그림 읽기(85)

하를렘의 성 바봉 교회와 <북동쪽에서 본 하를렘의 풍경>

기사승인 2025-09-08 08:00:05
헨드릭 브룸, <북동쪽에서 본 하를렘의 풍경>, c.1625, 프란스 할스 미술관

헨드릭 브룸(Hendrick Vroom, 1562/63~1640)은 하를렘(Haarem)에서 태어나 하를렘에서 죽었다. 브룸은 플랑드르 출신으로 바다와 강 풍경을 전문적으로 그린 최초의 네덜란드 화가였다.​​

이곳은 성 바봉 교회(St. Bavo of Grote)가 상징하는 네덜란드의 하를렘이다. 하를렘은 1517년 이후, 네덜란드 독립 전쟁과 개신교 박해로 인해 칼뱅주의자들이 자신들의 신앙을 지키기 위해 종교의 자유를 찾아 남부 저지대에서 온 이민자들의 물결 덕분에 크고 번영하는 도시가 되었다. 

하를렘이라는 지명보다 뉴욕의 할렘은 우리에게 더 친숙하다. 1609년 동인도 회사의 후원으로 뉴욕의 전신인 뉴 암스테르담을 발견하고 건설한 이는 바다에서 활로를 찾던 네덜란드 탐험가 헨리 허드슨(Henry Hudson)이기에 하를렘에서 따온 이름을 붙였다. 이 도시를 대표하는 화가 프란스 할스(Frans Hals, 1580~1666)도 안트베르펜에서 종교 때문에 이주하였다.​

해안선이 긴 네덜란드는 부존자원이 없어 중계무역과 상업으로 부를 이루었다. 그래서 민족성이 매우 진취적이며 개방적이고 동인도 회사와 주식회사를 세운 이들의 후손 답게 3개 국어를 구사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반 고흐의 경우 네덜란드어는 기본이고 영어도 능통했으며, 프랑스어로 동생 테오와 편지를 나누고 독일어는 읽을 수 있었다.
  
<북동쪽에서 본 하를렘의 풍경> 부분

네덜란드는 국토의 25%가 저지대로 바닷물의 역류를 막기 위한 둑을 쌓았고, 배수를 위한 풍차가 회전하고 있으며, 그 물길로 운하가 만들어진 운하 도시이다. 우리 세대는 초등학교 교과서에서 물이 새어 나오는 둑을 발견한 소년이 밤새 팔뚝으로 막아낸 이야기를 배웠다. 배들이 슈파르네스타트(Spaarnestad)강을 따라 오르내려 ‘슈파르네의 도시’라는 별명이 붙었다. 이 강은 1600년까지 하를렘과 주이더지 강을 연결했기 때문에 도시의 가장 중요한 동맥이다.  

하를렘은 암스테르담에서 서쪽으로 약 20km 떨어진 해안 사구 근처에 있는 도시이다. 해안 사구의 발달로 물이 깨끗해 맥주와 린넨 염색 가공과 조선업으로 유명하다.

린넨을 염색하기 전 불순물을 제거하는 세척과정이 필요한데 린넨을 삶아 모래 사구에서 건조시키는 그림도 있다. 또한 물이 맑아 맥주 양조업으로 유명하고, 여성 화가인 주디스 레이스터스의 아버지도 맥주 양조장을 운영했다. 그 시절에는 도수가 없는 맥주를 아이들이 물처럼 마시기도 했다.   

그로테 마르그트(Grote Markt) 광장의 성 바봉 교회, 동상은 인쇄술로 유명한 하를렘 출신의 로렌스 얀손 코스터(Laurens Janazoon Coster, 1370~1440)이다.   

10세기에 지어진 광장 전면의 시 청사와 네덜란드 르네상스 스타일의 주변 건물들은 여전히 그 모습을 간직하고 있다.

<북동쪽에서 본 하를렘의 풍경>, 성 바봉 교회

14세기에 하를렘은 도르드레흐트에 이어 네덜란드에서 두 번 째로 큰 도시였다. 하를렘의 중앙 시장 광장에 위치한 성 바봉 교회는 653년 10월 1일 성인 바봉이 사망한 뒤 지어진 성당이 1370년 불에 타 소실되어, 15세기부터 16세기까지 가톨릭 성당으로 건축되었으나, 종교개혁 이후 개신교 교회로 바뀌었다. ​  

성 바봉 교회

가톨릭의 수호자를 자처하는 스페인과 전쟁을 벌이고 승리한 네덜란드인들은 신앙의 자유를 만끽하였다. 가톨릭의 부패와 타락을 상징하는 내부의 화려한 성상과 성화는1566년 성상파괴운동으로 파괴되어, 흰 벽에 장식이 전혀 없는 검소한 네덜란드 개신 교회의 특징을 한눈에 볼 수 있다.

김부식이 ‘백제의 미’를 표현한 '검이불루 화이불치’(儉而不陋 華而不侈), ‘검소하지만 누추하지 않았고 화려하지만 사치스럽지 않았다’를 문자 그대로 보여주는 검박함이었다. 이 교회는 바로 네덜란드인들의 민족성을 상징하고 있다.

건축가 데브리제(De Vrieze), 얀 브루인(Jan Btuiin), 하르만즈(Harmansz)는 지붕에 두 개의 아치를 설치하였다. 아치형 천장을 둘러싼 네 개의 무거운 기둥은 바로 위에 있는 탑을 지탱해 주고 있다. 이는 프랑스 아미엥(Amiens)에 있는 1220년에 착공된 아미엥 고딕 대성당과 함께 유럽에서 가장 거대한 나무 십자가 탑이다.​​ 

천정은 신성 로마 제국의 황제인 카를(Karl) 5세의 아버지인 부르고뉴 공작 미남 왕 필리프(Philip) 1세의 문장인 별모양으로 장식되었다. 필리프 1세는 이 아치형 지붕이 지어진 1500년에 네덜란드의 군주였기 때문이다. 바닥에서 20m가 넘는 높이에 오크 나무로 만든 별모양의 아치형 천장(The oak stella vault)을 완성하는 데 8년이 걸렸으며 8개의 별들로 구성되어 있다.

아마 교회를 건축하는 과정에 석조 아치형이 고려되었지만, 돌은 너무 무거웠기에 그 아이디어는 결국 폐기되었다. ​​ 

중세인들에게 대성당이 갖는 의미는 지금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는 달랐다. 네덜란드 개척교회의 문장은 다음과 같다. 

“Ad Astra Prudentia et Fortitudine(신중함과 용기를 통해 별들에게)”

​이 문장은 반 고흐의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엄격한 칼빈 파 목사였기에 그들의 소명을 일깨우고 신념을 불태우는 문장이었다. 로마 교황청에 있는 시스티나 성당의 천정에도 미켈란젤로가 <천지창조>를 그리기 전에 별이 그려져 있었다.   

유럽에서 두 번 째로 큰 파이프 오르간

1738년 하를렘 시장들은 크리스티안 뮐러가 만든 유럽에서 두 번 째로 큰 이 장엄한 오르간을 시민들에게 기증하였다. 지금도 이 오르간은 기념비적인 외관과 소리로 매우 유명하다.

5000개의 파이프를 가진 세계적인 규모를 자랑하는 이곳에서 연주한 음악가로는 모차르트, 헨델, 멘델스존, 생상스(Saint-Saens), 알베르트 슈바이처 등으로 우리가 익히 들어 알만한 이들이다. 지금도 5월에서 10월까지 일주일에 두 번 시민들을 위한 무료 오르간 콘서트가 열리는 것이 1634년부터 내려온 하를렘의 전통이다. 다시 하를렘에 가게 된다면 웅장한 크기만큼 장엄한 소리를 내는 지 확인해 보고 싶다.

합창단과 프란스 할스 묘역
  
섬세한 철제장식으로 분리된 동쪽을 향한 성가대는 유럽 대륙에서 가장 긴 중세 합창단이었다. 성가대석 뒷편에는 하를렘 출신의 가장 유명한 화가 프란스 할스의 묘역이 있다. 1470년대에 브뤼헤에 살던 향신료상의 부인 바르바라 모렐은 18명까지 낳았다.

이 경우에 비한다면 그리 많은 편도 아니지만, 할스는 두 번 결혼하여 8명의 자식을 두었다. 술을 좋아하던 호방한 할스는 평생 돈 때문에 부인의 잔소리에 시달렸으며, 결국 파산하여 처가집 묘역에 함께 묻혔다. ​

스위스 출신의 철학 교수로 고전문헌학, 인도 학, 영어학을 전공한 피터 비에리(Peter Bieri, 1944~2023)는 파스칼 메르시어(Pascal Mercier)라는 필명으로 소설 <리스본행 야간열차>를 썼다. 이 소설은 독일 소설로 <향수> 이후 가장 많이 팔렸다. 

 "나는 대성당이 없는 세상에서는 살고 싶지 않다. 이 세상의 범속함에 맞설 대성당의 아름다움과 고상함이 필요하니까. 반짝이는 교회의 유리창을 올려다보며, 그 천상의 색에 눈이 부시고 싶다. 더러운 제복의 단조로운 색깔에 맞설 광채가 필요하니까. 교회의 혹독한 냉기로 나를 감싸고 싶다. 병영의 단조로운 고함 소리와 들러리 정치인의 재기 넘치는 수다에 맞설, 명령을 내리는 듯한 그 새된 천박함에 대항할 물 흐르는 듯한 오르간의 울림이, 흘러 넘치는 그 숭고한 음색이 듣고 싶다." 

대성당은 도시에서 가장 중심이 되며 다른 도시의 대성당보다 큰 것을 자랑으로 여겼다. 피렌체의 시뇨리아(시의회)는 설계자에게 이런 지침을 내렸다. 

"시민 하나하나의 영혼으로 구성된 고결한 도시의 영혼에 합당하게 원대한 정신을 담아 설계하기를"  

피렌체 두오모 성당의 경우 조적식(組積式) 돔을 완성시킬 기술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1296년 아르놀프 디 캄비오(Arnolfo di Cambio)가 세계에서 가장 큰 돔을 설계하였다. 1436년 브루넬레스키가 이중 돔으로 완공하기까지 140년이 걸렸고, 돔을 짓는 데만 400만개의 벽돌이 들어갔으며, 아직까지 조적식 돔으론 최대 규모를 자랑한다.​   

미셀 판 오버비케의 “평화와 관용”의 스테인드글라스

성 바봉 교회의 가장 현대적인 스테인드글라스 창문은 북쪽 복도에 있다. 그것은 하를렘 출신 미셀 판 오버비케가 설계를 하여 2008년에 설치하였다. 이 스테인드글라스의 주제는 '평화와 관용'으로, 빨간 망토에 다섯 개의 얼굴을 가진 현대적인 인물이다. 이는 조화롭게 공존할 세계 5대 종교를 나타낸다. ​​​

어떤 종교를 가졌는지 묻지 않고, 신앙을 가진 이들이 입장하여 기도, 추모 또는 성찰을 위해 잠시 쉬는 시간을 갖도록 초대되는 장소이다. 세계 5대 종교의 평화로운 공존을 위해 5개의 빨간 망토를 그린 스테인드글라스처럼 포용력 있는 변화를 상징하는 작품이 무척 고무적이며 인상적이었다.​​ 

(최금희 작가는 미술에 대한 열정으로 전 세계 미술관과 박물관을 답사하며 수집한 방대한 자료와 직접 촬영한 사진을 가지고 미술 사조, 동료 화가, 사랑 등 숨겨진 이야기를 문학, 영화, 역사, 음악을 바탕으로 소개할 예정이다. 현재 서울시50플러스센터 등에서 서양미술사를 강의하고 있다.)
홍석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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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석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