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를 자유케하라 

‘문화’를 자유케하라 

기사승인 2025-09-29 06:00:12
콘텐츠분쟁조정위원회 홍승기 위원장.

미국 상공회의소는 매년 지적재산권 지수(IP Index)를 발표한다. 한국의 지수는 나쁘지 않다. 4위에서 8위 사이를 유지하던 저작권은 최근 4년 연속 7위를 기록하고 있다. 저작권을 포함한 지적재산권 전체로는 12위, 13위를 오가더니 2025년 처음으로 10위권에 들었다.

저작권을 제외하고 산업재산권만으로 집계하면 순위가 약간 떨어지겠지만 그래도 큰 성과라 할만하다. 저작권 산업은 산업재산권 산업과는 달리 지속적으로 흑자를 기록하고 있다. 2024년에도 저작권 산업은 33.6억달러 흑자, 산업재산권 산업은 18.4억달러 적자였다. 2012년을 기점으로 콘텐츠 수출이 수입을 제쳤고 현재는 수입대비 수출액이 10배 수준이다. 최근 15년간 콘텐츠 산업매출은 2.3배, 수출은 5.1배 성장했다. 수출액으로 따지면 대표수출 품목인 이차전지나 가전을 앞섰다.

칸 영화제 그랑프리와 아카데미 작품상 등 4개 부문 수상작 ‘기생충’, 에미상 6개 부문 수상작 ‘오징어게임’, 토니상 최우수 뮤지컬 등 6개 부문 수상작 ‘어쩌면 해피엔딩’, BTS와 블랙핑크의 호조, 나아가 조성진과 임윤찬 등 클래식 음악가들의 권위까지 합쳐져서 K-culture의 성공을 만들었다. 윤여정을 세계무대로 올린 ‘미나리’, 애플TV+의 ‘파친코’, 지난 여름 불볕 더위에 서울 곳곳에 관광객을 끌어모은 ‘케이팝 데몬 헌터스’도 빼놓을 수 없다. 

K-culture의 성공 뒤에는 문화체육관광부(문체부)의 정책이 있었다. 1973년 영화진흥공사(현재 영화진흥위원회)를 만들고, 1982년에 한국영화아카데미를 설치하고, 1997년 종합촬영소를 준공하였다. 예술 엘리트 육성을 위해 전국 예술대학의 반대를 무릅쓰고 1993년 한국예술종합학교를 개교했다. 예술경영지원센터에 미술산업 육성 업무를 담당하게 하더니, 현재는 K-pop에 필수적인 안무가의 권익에 주목하고 있다. 1987년 세계저작권협약(Universal Copyright Convention) 가입에 맞춰 저작권심의조정위원회(현재 한국저작권위원회)를 설치하여 저작권 싱크탱크로 기능하게 한 점도 일본을 포함한 외국의 저작권 전문가들이 부러워한다. 

특허청이 지식재산처로 승격한다는 보도가 있다. 그 과정에서 저작권 업무를 지식재산처로 이관하여 지식재산처가 통할하여야 한다는 주장도 강력하다. 특허청은 등록에 의하여 발생하는 권리인 특허권·상표권·디자인권을 관장하고 문체부는 창작과 동시에 발생하는 저작권을 관할한다. 그러한 업무 분장이 합당할 뿐만 아니라 국제 표준(global standard)이기도 하다. 특허청은 정권이 바뀔 때마다 ‘저작권을 포함하는’ 지적재산권 전체를 관리하는 국가기구를 신설해야 한다는 주장을 해왔다. 

‘발명’과 ‘예술창작’은 성격이 다르다. 지적재산권 재판에 정통한 어느 법관은, 특허와 저작권을 한 바구니에 담자는 얘기는 ‘음대와 공대를 통합하자는 터무니 없는 주장’이라고 논평했다. 한국인의 예술적 기량은 세계시장에서 훌륭하게 발현되고 있다. 시민 개개인이 이룬 창발성이 기본이지만, 배후에서 맞춤한 시점에 적절한 지원책을 만들고 육성한 문체부의 정책도 흥행조건이었다. K-culture의 순항을 원한다면 판을 깨지 말아야 한다. 공부 잘하는 아이는 하던 대로 두어야지, 쓸데없이 전학시키고 괴롭혀서는 안 된다.

글·홍승기 위원장
콘텐츠분쟁조정위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