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으로의 초대] 최금희의 그림 읽기(84)

[인문학으로의 초대] 최금희의 그림 읽기(84)

터너의 대표작 <노예선>과 <노럼 성 일출>

기사승인 2025-09-01 09:00:05
조셉 말로드 월리엄 터너, <노예선-폭풍우가 밀려오자 죽거나 죽어가는 이들을 바다로 던지는 노예 상인들>, 캔버스에 유채, 1840, 90.8x122.6cm, 보스턴 미술관

영국 낭만주의 풍경화를 대표하는 월리엄 터너(Joseph Mallord William Turner, 1775~1851)의 대표작은 누가 뭐라해도 <노예선>이다.

이 작품의 부제(副題)는‘폭풍우가 밀려오자 죽거나 죽어가는 이들을 바다로 던지는 노예상인들’이다. 긴 부제는 사건을 축약해서 한눈에 보여준다. 이는 실제 있었던 사건을 묘사했지만, 우리가 바로 알아차리기는 쉽지 않다. 아름답고 끔찍했던 <노예선>은 분홍색, 보라색, 파란색, 노란색의 강렬한 원색이 화려한 변주를 하며 하늘을 물들이고 있고 바다에서는 형언할 수 없는 잔혹한 장면이 펼쳐지고 있다. 

<노예선> 부분

오른쪽 아래는 쇠고랑에 묶인 다리를 사나운 눈을 하고 붉은 이빨을 가진 난폭한 물고기들이 아귀처럼 달려들어 물어 뜯는 악몽 같은 장면이다. 피비린내를 맡은 갈매기 떼까지 몰려든다. 흔들리는 붓터치는 불분명한 형태로 잔인하고 처절하며 급박한 상황을 전달해주고 있다. 말로 표현하는 것보다 터너가 뿜어내는 색의 감정적인 힘과 혼란스러운 구도가 더욱 강렬한 인상을 준다. 

이성에 기초한 신고전주의보다 감수성과 직관을 우선적으로 평가하는 낭만주의 화가들은 사실적인 재현보다 예술가들의 창조성에 가치를 두기 시작했다. 예술가들은 신비한 개성으로 천재 취급을 받고 어느 시대보다 우월한 지위를 얻게 되었다. 

<노예선> 부분

살기 위해 안간힘을 다하고 버티지만 부질없다. 황망하여 허둥거리는 팔만 남은 이 그림은 어찌할 수 없는 절망을 묘사하기엔 더할 수 없이 극적인 표현이다. 터너는 관람자들에게 노예제도의 공포, 익사하는 희생자, 죽음으로 향할 수밖에 없는 노예들의 냉혹한 현실을 목격해 달라고 요청하고 있다. 

대서양 노예무역은 인류역사상 가장 큰 규모의 강제 이주였으며, 약 366년 동안 1,250만 명의 아프리카인이 대서양을 건너 아메리카 대륙으로 강제로 운송 되었다. 이 과정에서 약 1,100만 명만이 생존하여 신대륙에 도착하였다. 아프리카에서 몇 달 동안 짐짝처럼 실려오며 쇠고랑에 묶인 노예들은 제대로 먹지도 못하고 위생 상태도 엉망이어서 거의 150만명이 병들어 죽었다. 오죽하면 서인도 제도의 자메이카가 마라톤을 비롯한 육상 경기에서 뛰어난 이유가 노예선에서 살아남은 우수한 유전자를 보유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해석도 있다. 

노예가 배에서 사망하면 보험금을 받을 수 없지만 실종되면 보험금을 받을 수 있었다. 그래서 폭풍우가 밀려오자 상인들은 노예들을 산채로 수장시켜 보험금을 타려고 하는 것이다. 이 그림은 1781년 선장이 보험금을 받기 위해 133 명의 아프리카인 노예를 배 밖으로 던져버린 영국 선박 종(Jong)호에서 일어난 악명 높은 사건을 다루고 있다. 영국에서 노예거래는 1807년 공식적으로 금지되었지만, 이 그림이 그려진 1840년에도 여전히 노예는 거래되고 있었다.   

<노예선> 부분

범선은 133 명의 노예들을 미친듯이 날뛰는 바다에 던져버리고, 저 멀리 도망치고 있다. 파도가 돛대까지 솟구치는 상황에서 핏빛 배경은 인간을 단죄하는 지옥불처럼 혼란스럽다. 터너는 1840년 왕립 아카데미에서 <노예선>을 전시할 때 미완성 및 미발표 시 ‘희망의 타락, 1812’에서 발췌한 내용과 함께 선보였다.  

모두 손을 들어, 꼭대기 돛대를 치고 누워라;

분노에 찬 석양과 사나운 가장자리의 구름들

태풍이 온다고 선언하세요.

갑판을 휩쓸기 전에 배 밖으로 던져버리세요.

죽은 자와 죽어가는 자들-그들의 사슬에 귀 기울이지 마세요.

희망, 희망, 잘못된 희망!

지금 당신의 시장(market)은 어디에 있습니까?

<노예선> 부분

예술은 폭풍을 마주하는 용기이다

60대의 터너는 오디세우스(Odysseus)가 사이렌의 노래를 듣기 위해 돛대에 몸을 묶은 것처럼 폭풍이 오는 바다를 지켜보기 위해 돛대에 자신을 묶었다. 터너는 사나운 폭풍 속에서 쏟아지는 빗줄기와 넘실대는 파도를 지켜보았다. 바다를 소재로 한 낭만적인 풍경화로 잘 알려진 터너에겐 폭풍을 대면하는 용기가 있었다. 터너와 바다와 사춘기의 공통점은 ‘질풍노도’이다. 낭만주의자 터너에게 바다와 폭풍에 휘몰아치는 배는 묘사하기 가장 좋은 대상이었다. 

일본 목판화 중 가장 많이 알려진 우키요에의 대가 가쓰시카 호쿠사이가 몇 년간 파도를 관찰한 끝에 그 유명한 <가나가와 해변의 높은 파도 아래>를 그리고, 스스로 그림에 미친 ‘가교진(畵狂人)’이라 불렀다. 미술사조를 바꾼 새로운 개척자들은 전부 반항아였다. 대중의 인기에 연연해 기존의 취향에 안주하던 세대에게 약간의 향수를 느끼게 할지는 모르지만, 시대의 동향에 민감한 예술가라면 반드시 넘어야 하는 문이다. 

스위스의 소설가 헤르만 헤세는 <데미안>에서 “새는 알에서 나오려고 투쟁한다. 알은 세계다. 태어나려고 하는 자는 한 세계를 파괴해야 한다. 새는 신에게 날아간다. 신의 이름은 아브락사스(Abraxas)”라 묘사했다. 아브락사스는 스위스의 심리학자 칼 융(Carl Jung)이 주장한 “선과 악, 빛과 어둠 등 대립되는 개념들 그 너머에 존재하는 초월적인 존재”이다.

또한 칼 융은 아브라삭스를 인간이 내적으로 성장해 자아를 형성하기 위한 통합, 성숙, 일체화의 과정을 추진하는 힘의 상징으로 사용했다. 브라운 아이드걸스의 노래에 나오던 ‘아브라카다브라(Abracadabra)’는 2세기 무렵 그리스의 아브라삭스가 부르던 주문이다.

조셉 말로드 월리엄 터너, <노럼 성 일출 Norham Castle, Sunrise>, 1845년경, 캔버스에 유채, 테이트 브리튼
 
<노럼 성 일출>: 이해 불가능에서 상징으로

터너는 1830년대부터 1840년대 후반까지 맹렬히 여행을 계속하며 최고의 성과를 보여준다. 그 작품들은 폭발적인 색채와 후기 캔버스에 나타난 빛속으로 녹아 드는 추상적인 아름다움으로 <노럼 성 일출>과 같은 21점이나 되는 미완성 그림에서 특히 두드러진다. 이 그림들은 터너 사후, 1856년 국립 컬렉션에 기증되었지만, 목록화 되지 않은 채 남아있었다. 왜냐하면 미술관 관계자들도 이 그림들을 단지 ‘미숙하거나 미완성’으로 간주하여 미처 전시할 생각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1906 년이 되자, 새로운 시각으로 새로운 세대가 터너를 바라보기 시작하며, 이 그림들의 가치를 인정받게 되었다. 유화를 사용했지만 마치 수채화로 그린 듯한 미완성된 붓놀림과 수채화처럼 번지는 희미한 색상은 터너와 존 컨스터블이 프랑스 인상파의 길을 선도했다는 국수주의적인 믿음을 확고히 하는 듯했다. 지난 100년 동안 <노럼 성 일출>은 터너의 후기 양식에 대한 여러 아이디어를 차츰 구현했음을 보여준다. 

특히 색채와 빛의 유희를 강조하여 내용을 최소화하였다. 그는 수년 전에 그렸던 주제로 돌아와서 주제가 거의 드러나지 않을 정도로 작품을 발전시켰다. 미완성된 상태는 그가 어떻게 색채와 기법의 시적 가능성을 추상화의 한계까지 확장할 수 있었는지를 보여준다. 현재 이 작품들은 새롭게 문을 연 테이트 브리튼 터너 전시실의 중심이 되었다. 2017년 부에노스아이레스 국립 미술관에서 터너의 수채화 특별전를 보았을 때 나도 그 가치를 잘 알지 못했었다. 
 
클로드 모네, <인상, 해돋이>, 1872, 48x63cm, 캔버스에 유채, 마르몽탕 미술관, 파리

1845년에 그려진 터너의 <노럼 성 일출>과 모네가 1872년에 그린 <인상, 해돋이>를 나란히 놓고 보면 모네가 터너에게 얼마나 큰 영향을 받았는지 한눈에 알 수 있다.

터너는 자신의 그림에 왜 부제(副題)를 붙였는가?

터너는 단순한 자연의 풍경을 그리는 데 그치지 않고, 그 안에 서사와 상징을 담아내려 했다. 당시 미술계에서 가장 높은 평가를 받던 역사화의 위상에 도전하기 위해, 그는 자신의 풍경화에 신화나 역사적 사건을 암시하는 부제를 붙이며 작품의 깊이를 더했다. 이는 그림이 단순한 시각적 재현을 넘어, 시대와 인간의 이야기를 품고 있음을 드러내는 장치였다.

터너는 부제를 붙이는 데 있어 매우 자유로웠다. 때로는 실제 그림과 직접적인 관련이 없거나 과장된 표현을 사용하기도 했다. 어떤 경우에는 문헌적 근거가 없는 허구의 이야기를 부제로 삼아, 관객이 그림 자체에 더욱 집중하도록 유도했다. 이는 일종의 유희이자, 당시 미술계의 엄격한 규범에 대한 풍자였다.

그의 부제는 작품을 해석하는 실마리가 되면서도, 동시에 감상자의 상상력을 자극하는 열린 문장처럼 작용한다. 빛과 색채, 자연의 힘을 강조하는 터너의 낭만주의적 표현은 이러한 부제를 통해 더욱 강렬하게 전달되며, 후대 인상주의나 추상화에까지 영향을 미쳤다.

결국 터너의 부제는 단순한 설명을 넘어, 예술적 의지와 유머, 그리고 시대를 초월한 감성을 담은 독창적인 표현 방식이라 할 수 있다. 그의 작품은 부제를 통해 더욱 풍성해지고, 관객마다 다른 감동과 해석을 이끌어내며, 예술의 무한한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최금희 작가는 미술에 대한 열정으로 전 세계 미술관과 박물관을 답사하며 수집한 방대한 자료와 직접 촬영한 사진을 가지고 미술 사조, 동료 화가, 사랑 등 숨겨진 이야기를 문학, 영화, 역사, 음악을 바탕으로 소개할 예정이다. 현재 서울시50플러스센터 등에서 서양미술사를 강의하고 있다.

홍석원 기자
001hong@kukinews.com
홍석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