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위 ‘더 센 상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했습니다. 이번 개정안은 집중투표제 도입과 감사위원 분리선출 확대로 소액주주 권익 보호와 대주주 견제 수단을 마련했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반면 기업의 경영권 분쟁을 불러올 수 있다는 우려도 낳고 있습니다. 경제 전반에 큰 변화가 예상되는 만큼 관련 내용을 살펴봤습니다.
26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전날 2차 상법 개정안은 여당 주도로 국회를 통과했습니다. 개정안은 재석 의원 182명 가운데 찬성 180명, 기권 2명으로 가결됐습니다. 여당인 더불어민주당과 범여권 정당들이 찬성표를 던진 결과입니다.
이번 2차 상법 개정안은 지난 7월3일 본회의를 통과한 상법 개정안의 후속 버전입니다. 앞서 통과된 1차 개정안은 기업지배구조 개선과 주주 권익 보호를 최우선으로 하기 위해 이사의 충실 의무를 기존 회사에서 ‘회사 및 주주’로 확대하는 게 골자입니다. 아울러 최대 쟁점이었던 감사위원 선출 시 최대 주주와 특수관계인의 의결권을 합산 3%로 제한하는 일명 ‘3% 룰’도 포함했죠. 이외에도 △전자주주총회 도입 △상장회사 사외이사 명칭을 독립이사로 변경 등의 내용도 담았습니다.
김병기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는 이날 페이스북을 통해 “대한민국 경제의 난제인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의 발판”이라며 “위대한 진전”이라고 평가했죠. 그러면서 “과도한 부동산 의존에서 벗어나 기업과 주주가 함께 성장하는 건강한 시장 생태계가 조성되길 기대한다”고 말했습니다.
‘더 센 상법’ 핵심은…‘집중투표제 의무·감사위원 분리선출 확대’
2차 상법 개정안이 ‘더 센 상법’으로 평가받는 이유는 1차 상법 개정안에서 제외됐던 쟁점 제도들이 대거 포함됐기 때문입니다.
우선 개정안은 자산 규모 2조원 이상 상장사가 이사를 선임할 때 집중투표제 시행을 의무화했습니다. 집중투표제란 이사 선임 시 후보별로 투표하는 기존 방식에서 벗어나 소액주주들이 선임하는 이사의 수만큼 다른 후보 표결에 대한 의결권을 특정 후보에 몰아줄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하는 제도입니다. 국내에는 지난 1998년 집중투표제가 도입됐으나, 회사 정관에서 집중투표를 배제할 수 있어 무의미하단 지적을 받아왔습니다.
집중투표제는 주주총회에서 이사를 선임할 때 1주당 선임할 이사 수만큼 의결권을 부여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소액주주가 10주를 보유한 A 회사에서 이사 5명을 선출할 경우, 10주에 해당하는 총 50개의 의결권을 행사할 수 있습니다. 또 이 의결권을 특정 이사 후보 한 명에게 몰아서 투표할 수 있죠.
이처럼 특정 이사 후보에게 표를 몰아주는 방식이 가능해지면 소액주주, 행동주의 펀드 등이 지지하는 후보가 이사회에 진입할 가능성이 높아집니다. 이와 함께 대주주가 내세우는 이사의 선임을 저지할 수 있는 방안도 마련됩니다. 기존과 달리 소액주주의 목소리가 이사회에 직접 반영되는 점에서 유의미한 지배구조 변화를 끌어 낼 수 있습니다. 소액주주도 이사 선임이 가능해 대주주 견제와 이사회 독립성 확보가 가능해서죠.
집중투표제를 통해 이사 선임을 성공한 사례도 있습니다. 지난해 행동주의펀드 얼라인파트너스자산운용은 JB금융지주 이사회에 2명의 이사를 진입시키는 데 성공했죠. 당시 얼라인은 집중투표제를 활용한 전략으로 국내 금융지주 사상 첫 주주제안 사외이사 등극을 이뤘습니다. 얼라인은 해당 주총 결과를 집중투표제의 중요성과 효과를 증명하는 의미 있는 사례로 진단했습니다. 대주주를 제외한 소수주주도 지분율에 비례해 독립적 이사 선임이 가능함을 시사했기 때문이죠.
아울러 감사위원 분리 선출을 기존 1명에서 2명으로 확대하는 방안도 개정안에 담겼습니다. 이는 앞선 1차 개정안의 3%룰과 함께 적용될 경우 소액주주의 이사회 및 감사위원회 내 영향력을 크게 늘릴 것으로 전망됩니다. 이정빈 신한투자증권 연구원은 “3%룰 확대 적용 시 최소 2인의 감사위원을 소액주주 측이 확보할 수 있어 회계 감사, 내부통제 등에서 실질적 거부권 행사가 가능하다”면서 “감사위원회의 과반을 차지하진 않지만, 내부 의사결정 과정에서 독립적 목소리가 두드러지게 작용할 수 있는 계기”라고 분석했습니다.
환영하는 금투업계…우려하는 재계
금융투자업계는 이같은 2차 상법 개정안을 긍정적으로 보고 있습니다. 지난 7일 금융감독원이 금융투자협회와 개최한 자본시장 현장전문가 간담회 참석자들은 최근 상법 개정이 국내외 투자 심리를 크게 개선해 시장 성장을 견인했다고 분석했죠. 글로벌 투자자와 개인투자자들이 상법 개정을 통해 정부의 확고한 정책 방향을 확인한 결과라는 설명입니다.
김대종 세종대학교 경영학부 교수는 “개정안은 기업 지배구조 투명성 제고와 소액주주 권익 보호, 자본시장에 대한 신뢰 회복을 주된 목표로 하고 있다. 특히 감사위원 분리 선출, 집중투표제 의무화 등은 주주 중심 경영문화로 전환을 유도하려는 조치”라며 “이같은 제도는 장기적으로 국내 기업의 신용도 향상과 외국인 투자 확대로 이어질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반면 재계는 우려의 목소리를 내놓고 있습니다. 상법 개정안 통과로 기업 입장에서 경영권 분쟁 등 리스크가 발생할 가능성이 커진 영향이죠.
한국경제인협회와 대한상공회의소 등 경제8단체는 전날 공동 입장문을 통해 “이번 상법 개정으로 경영권 분쟁 및 소송 리스크가 증가할 가능성이 큰 만큼, 국회는 입법 부작용을 최소화하는 균형 있는 입법에 힘써주길 바란다”라며 “투기 자본의 경영권 위협으로부터 자유로운 기업 활동을 보장할 수 있도록 글로벌 스탠다드 수준의 경영권 방어 장치 마련이 시급하다”라고 토로했습니다.
그러면서 “기업이 미래를 위해 과감한 결정을 내릴 수 있도록 ‘경영 판단 원칙’을 명문화하고 배임죄도 합리적으로 개선해야 한다”며 “기업이 혁신과 성장에 매진할 수 있도록 경제 형벌과 기업 규모별 차등 규제·인센티브를 대대적으로 정비해 나갔으면 한다”고 덧붙였죠.
기업들은 당분간 2차 상법 개정안 시행에 대비해 나갈 전망입니다. 핵심인 집중투표제 의무화가 단순한 제도 도입을 넘어 기업 지배구조의 근본적 재편을 의미하기 때문이죠. 이정빈 신한투자증권 연구원은 “기업들은 정관 변경, 이사회 운영 시뮬레이션, 우호지분 관리 등 선제 대응을 준비해야 한다”면서 “단기적으로 경영권 방어 이슈와 의사결정 지연, 기업가치 변동성 확대라는 부정적 효과도 나타날 수 있기 때문”이라고 내다봤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