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 희망 있어도 포기”…약값 장벽에 가로막힌 VHL 환자들

“살 희망 있어도 포기”…약값 장벽에 가로막힌 VHL 환자들

3일 환자단체 권익위에 진정서 제출
약값으로 월 최대 2200만원 부담
국민청원 5만명 동의 받았지만 세 차례 심의 연기
“반복 수술과 약값 부담에 파산 위기”…웰리렉 급여 촉구

기사승인 2025-07-09 06:00:04
폰 히펠린다우(VHL)병을 앓고 있는 환자 윤지연(가명)씨의 호소문. 한국희귀·난치성질환연합회 제공

폰 히펠린다우(VHL)병 환자들이 치료비 부담으로 인한 고통을 호소하고 있다. 특히 국내에 도입된 신약 ‘웰리렉’(성분명 벨주티판)은 생명을 이어가는 데 필수적인 약물이지만, 한 달 수백만 원에 달하는 고액의 약값 때문에 실제로는 사용조차 어려운 상황이다. 환자들은 웰리렉의 건강보험 적용이 시급하다며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8일 제약업계에 따르면, 한국희귀·난치성질환연합회는 지난 3일 VHL 환자들이 건강권과 생명권이 위협받고 있다며 국가인권위원회와 국민권익위원회에 진정서를 제출했다. 연합회는 △웰리렉 건강보험 적용 △희귀질환 치료제 심사 절차 간소화 △경제적 지원 확대 △법적 재정지원 근거 마련 등을 정부에 요구했다. 연합회는 “약이 있어도 너무 비싸 치료를 받을 수 없는 현실은 의료 접근권과 생명권을 침해하는 명백한 인권 문제”라며 “재정 논리로 생명이 좌우되어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VHL은 유전성 희귀난치성 질환으로 신체 여러 장기에 혈관종과 종양이 반복적으로 발생한다. 뇌, 척수, 신장, 췌장, 부신 등 다양한 부위에서 나타나는 종양은 환자의 생명과 삶을 직접적으로 위협한다. 이 질환은 유전 가능성이 크다. 부모가 VHL을 앓고 있을 경우 자녀에게 유전될 확률이 50%에 달한다. 환자들은 평생 수차례 수술을 받아야 하지만 신경 손상이나 기능 저하 같은 심각한 부작용이 따른다. 모든 종양을 수술로 제거하기 어려운 사례도 많다. 여러 장기에서 동시에 종양이 발생하거나 수술이 까다로운 부위의 병변에는 수술 외 치료법이 절실하다.

이런 상황에서 VHL 치료제인 웰리렉은 치료가 쉽지 않은 환자들에게 새로운 대안으로 주목받고 있다. 한국MSD가 진행한 임상 3상 결과에 따르면, 웰리렉 복용 환자의 67%에서 종양 크기가 최대 50%까지 감소하는 등 유의미한 효과가 확인됐다. 이 약물은 수술 횟수를 줄이고 환자의 삶의 질을 개선하는 데에 긍정적 영향을 준 것으로 분석됐다. 종양 크기가 줄어들거나 더 이상 자라지 않는 등 치료 효과를 본 사례들이 보고되고 있다.

하지만 웰리렉은 한 달에 최대 2200만원에 달하는 막대한 비용이 든다. 이 약은 현재 건강보험 비급여 항목으로 분류돼 있어 환자가 전액을 부담해야 하며, 이로 인해 치료를 포기하거나 가족 전체가 경제적 파탄에 직면하는 경우도 잇따르고 있다.

대학생이자 VHL 환자인 양세희(가명)씨는 “흉추에 종양이 생겨 수술을 받은 후 VHL 진단을 받았다”며 “이후 여러 부위에서 종양이 다발적으로 발생해 실명과 전신 마비 위험에 처해 있다”고 말했다. 그는 “웰리렉이 삶을 이어갈 수 있는 유일한 희망인데 연간 약값만 2억원에 달해 현실적으로 감당하기 어렵다”며 “전면 급여화가 어렵다면 치명적 위험에 놓인 환자라도 제한적 보험 지원을 해주길 바란다”고 호소했다.

두 아이를 둔 윤지연(가명)씨는 수년째 VHL과 싸우고 있다. 윤씨는 신장, 췌장, 척수, 눈 등에 병변이 발생해 수차례 수술을 받았다고 했다. 그는 “생계가 어려운 여건에서 매달 수백만 원의 약값을 감수하고 있다”며 “아이들에게도 유전 가능성이 있어 정기 검사와 관리가 필요하다. 아이들의 엄마로 살고 새로운 삶의 희망을 가질 수 있도록 유일한 치료제인 웰리렉의 조속한 건강보험 적용을 바란다”고 말했다.

웰리렉은 지난 2023년 5월 국내에서 식품의약품안전처의 허가를 받은 이후 지난해 4월과 12월 두 차례에 걸쳐 건강보험 급여 적용을 신청했지만 암질환심의위원회(이하 암질심)의 문턱을 넘지 못했다. 현재 한국MSD는 올해 세 번째 급여 신청을 신청한 상태다.

앞서 지난해 6월에는 웰리렉 건강보험 적용을 촉구하는 국회 국민동의청원이 5만명 이상의 동의를 받아 국회 보건복지위원회에 회부됐지만 안건이 심의에서 세 차례나 연기되면서 논의를 제대로 갖지 못했다. 

연합회 관계자는 “헌법이 보장하는 생명권과 건강권은 모든 국민이 인간으로서 존엄과 가치를 누리며 행복을 추구할 수 있는 권리의 근간”이라며 “경제적 이유 때문에 치료받을 권리가 제한되는 것은 명백한 기본권 침해”라고 강조했다. 또 “정부가 웰리렉의 건강보험 적용을 신속히 추진하고 환자들이 치료받을 기회를 평등하게 보장할 수 있도록 제도 개선에 나서야 한다”며 “국가와 사회가 함께 환자의 인간다운 삶을 지지하고 어떤 환자도 치료에서 소외되지 않는 세상을 만들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은 이번에 제약사 측이 제출한 서류를 검토해 급여 적정성을 평가하겠다는 입장이다. 심평원 관계자는 “웰리렉정은 지난해 8월과 올해 3월 암질심에서 임상적 유용성, 의약품 가격 대비 비용효과성의 불확실성에 따라 두 차례 급여 기준이 설정되지 않은 바 있다”며 “지난달 제약사에서 임상적 유용성 등 자료를 보완해 재신청한 만큼 향후 암질심에서 심의할 예정”이라고 전했다. 
박선혜 기자
betough@kukinews.com
박선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