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부가 오는 11월 ‘담배유해성관리법’ 시행을 앞두고 전자담배 관리 강화를 예고했지만, 합성 니코틴을 사용하는 제품은 여전히 법적 담배로 분류되지 않아 과세와 규제에서 제외되고 있다. 관련 법 개정 없이는 유해성 심사나 광고 제한 등의 실질적 관리가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9일 국회예산정책처 자료에 따르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3개국은 니코틴을 담배로 규정하고 있으며, 이 중 19개국은 니코틴에 세금까지 부과하고 있다. 미국은 지난 2021년부터 합성 니코틴을 담배로 규정해 다른 제품과 동일하게 규제하고 있다.
반면 한국은 여전히 합성 니코틴을 ‘담배’로 보지 않는다. 현행 담배사업법이 ‘담배’를 연초(煙草)의 잎을 원료로 한 것으로만 정의하고 있어, 잎이 아닌 줄기·뿌리에서 추출하거나 화학적으로 합성한 니코틴은 법적 담배로 인정되지 않는다.
이 때문에 합성 니코틴 액상형 전자담배는 제조·유통·판매 허가 없이 시중에 유통되고 있다. 광고·경고문구 등 의무 규제도 받지 않는다. 유통량 파악조차 어려워 학교 인근에서 판매해도 규제할 근거가 없다. 줄기·뿌리 추출 니코틴은 2021년부터 과세 대상이 됐지만, 합성 니코틴은 여전히 세금과 규제를 피하고 있다.
입법 공백으로 인해 발생하는 세수 손실도 크다. 지난해 송언석 국민의힘 의원이 기재부·관세청·식약처·전자담배협회 자료를 분석한 결과, 합성 니코틴 액상 전자담배에 부과하지 못한 제세부담금은 최근 4년간 약 3조3895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관련 법 미비로 인해 실질적으로 한 푼도 세금을 걷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합성 니코틴 제품은 규제 공백을 틈타 시장 점유율을 빠르게 넓히고 있다. 업계 일각에서는 이미 ‘세력화’ 단계에 접어들었다는 평가도 나온다. 중독성 측면에서 천연 니코틴과 차이가 없는 만큼, 동일한 수준의 규제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김도환 전자담배총연합회 부회장은 “우리 단체는 약 10년 전부터 합성 니코틴 규제 필요성을 지속적으로 제기해 왔다”며 “업계 관계자들조차 규제를 원하고 있는데, 국회가 왜 통과시키지 않는지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어 “니코틴은 합성이든 천연이든 중독 물질이다. 이를 국가가 관리하지 않는 것은 마약을 허용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며 “합성 니코틴은 규제가 없어 이미 세력화됐고, 결국 국회의 늑장 대응이 화를 불렀다. 지금이라도 규제를 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부도 규제 필요성에 공감하는 분위기다. 다만 담배 규제와 과세는 각 부처의 역할이 나뉘어 있다. 보건복지부는 건강 유해성을 이유로 금연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으며, 법률상 '담배' 정의 변경과 과세 체계 개편은 기획재정부가 담당하고 있다.
정은경 보건복지부 장관은 최근 “합성 니코틴이 포함된 액상형 전자담배도 궐련과 동일하게 규제하겠다"며 "건강 유해성이 큰 만큼 기존 담배와 같은 수준의 관리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기획재정부 측은 “합성 니코틴 전자담배를 담배사업법상 ‘담배’로 포함하는 논의를 내부에서 진행 중”이라며 “유관기관 의견을 반영하고 있다”고 말했다.
업계는 단순 규제가 아닌 체계적인 관리와 명확한 분류 기준 마련이 선행돼야 한다고 지적한다. 한 담배업계 관계자는 “11월 시행되는 담배유해성관리법과 맞물려 전자담배에 대한 과세 체계와 분류 기준 정비가 필요하다”며 “무조건적인 일괄 과세보다는 전문가·업계 간 충분한 협의가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