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전기차 시장의 패러다임이 바뀌고 있다. ‘혁신’과 ‘프리미엄’을 내세워 시장을 주도해온 테슬라가 잇단 결함과 고가 수리비 논란으로 흔들리는 사이, 합리적인 가격과 안정된 품질을 내세운 BYD와 현대차·기아가 새로운 강자로 떠오르고 있다. 전문가들은 “소비자 인식이 변화하며 전기차 시장이 대중화로 넘어가는 전환점에 들어섰다”고 진단한다.
테슬라의 전기차 시장 독주, 언제까지?
테슬라는 여전히 판매량에서 독주를 이어가고 있다. 한국수입자동차협회(KAIDA)에 따르면 9월 테슬라는 총 9069대가 신규 등록돼 2위 메르세데스-벤츠(6904대), 3위 BMW(6610대)를 제치고 1위에 올랐다. 올해 1~9월 누적 등록 대수는 4만3612대로 전년 대비 84.7% 증가했다. 그러나 성장의 이면에는 품질 논란이 자리한다. 일부 모델에서 배터리 관리 시스템(BMS) 오류 등 품질 논란이 제기되고, 수리비 부담이 커지면서 소비자 불만이 적지 않다.
테슬라의 품질 논란은 중고차 시장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케이카가 14일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테슬라 주력 모델인 ‘모델3’와 ‘모델Y'의 평균 시세가 8월부터 2개월 연속 하락했다. 모델3는 7월 3847만원에서 9월 3729만원으로, 모델Y는 같은 기간 4918만원에서 4789만원으로 떨어졌다. 특히 2021년식 모델의 하락 폭이 컸다. 모델3는 8월과 9월 각각 2.8%, 1.2%로 내렸고, 모델Y는 3.1%, 2.8% 하락했다.
두 모델 모두에서 공통으로 나타나는 배터리 관리 시스템 오류, 이른바 ‘BMS_a079' 코드가 시세 하락의 주된 원인으로 꼽힌다. 해당 오류는 배터리 충전량을 제한하고 교체를 권유하는 결함으로, 보증 기간이 끝난 차량은 수리가 수 천 만원에 이른다.BYD코리아, 지난달 처음 월간 판매 기록 1000대 돌파
테슬라의 불안 속에서 중국 전기차 브랜드 BYD가 빠르게 시장을 파고들고 있다. BYD코리아는 4월부터 ‘아토3’, ‘씰’, ‘씨라이언7’ 등 3개 차종을 순차적으로 출시했으며, 9월까지 총 2967대를 판매했다. 특히 지난달에는 처음으로 월간 1000대 이상을 기록하며 상승세를 보였다.
BYD에 따르면 올해 4월부터 9월까지 국내에서 판매된 3개 전기차 모델의 누적 판매량은 2967대로 집계됐다. 이 가운데 ‘아토3’가 1909대로 가장 많았고, ‘씨라이언7’이 828대, ‘씰 다이내믹 AWD’가 230대로 뒤를 이었다. 9월 한 달 동안은 ‘씨라이언7’이 825대 판매돼 BYD 전체 월간 판매량(1020대)의 대부분을 차지했다. BYD코리아는 브랜드 론칭 6개월 만에 3000대에 가까운 판매고를 올리며 빠르게 시장에 안착했다.
BYD는 국내 시장 공략 속도를 더욱 높이고 있다. BYD코리아는 현재 전국에 23개 전시장과 15개 서비스센터를 운영 중이며, 연내 전시장 30곳·서비스센터 25곳 구축을 목표로 하고 있다. 내년에는 소형 전기 해치백 ‘돌핀 액티브’를 선보이며 라인업 확대에 나설 전망이다.
국내 완성차, 사실상 현대차·기아만 살아남아
국내 완성차 업계는 ‘가성비 전기차’ 흐름에 적극 대응하며 존재감을 높이고 있다. 현대차는 아이오닉5(1만2204대), 캐스퍼 EV(6624대), 아이오닉6(4381대) 등 주요 전기차 모델의 판매가 모두 늘었다. 기아는 EV6가 7954대, 신형 EV3가 올해 1만8732대가 팔리며 국산 전기차 판매 1위를 기록했다.
반면 르노코리아·한국GM·KG모빌리티 등 중견 3사는 고전 중이다. 르노코리아의 세닉은 8~9월 두 달간 83대 판매에 그쳤으며, 한국GM의 이쿼녹스EV는 16대 판매에 머물렀다. KG모빌리티의 토레스EVX도 올해 1591대로 전년보다 3700여대 감소했다. 가격 경쟁력을 앞세운 수입 전기차와 비교해 브랜드 인지도와 상품성이 떨어진다는 평가다.
소비자 구매 패턴 변화와 관련해 이호근 대덕대 미래자동차학과 교수는 “초기엔 환경 의식이나 호기심으로 전기차를 구매했지만, 이제는 연료비·세금·유지비 등 전체 운용비용을 따지는 단계”라며 “보급형 전기차의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 시점에 다다랐다”고 분석했다.
이어 그는 “테슬라는 여전히 브랜드 충성도가 높지만, BYD는 중국산 전기차에 대한 편견을 극복해야 하는 과제가 있다”며 품질 신뢰 확보가 향후 성패를 가를 것으로 전망했다.
이 교수는 향후 시장 변수를 두고 “내연기관과 비교해 2500만~3000만원대의 합리적 가격을 갖춘 저가형 전기차가 시장의 중심이 될 것”이라며 “충전 인프라 확충이 병행되지 않으면 보급 확대는 한계에 부딪힐 것”이라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