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본 건전성 개선을 위해 중소형 보험사들이 잇따라 유상증자에 나서고 있다. 금융당국의 규제 강화와 자본성증권 콜옵션(조기상환청구권) 만기 도래가 맞물리면서 증자를 검토하는 보험사도 늘어날 전망이다. 다만 유상증자 실행 여부는 모기업(대주주)의 자금 여력에 달려 있어, 금융지주 계열사는 비교적 신속히 자본 확충에 나서는 반면 비금융지주나 독립계 보험사는 계열 지원 기반이 약해 추진이 쉽지 않다는 분석이 나온다.
16일 보험업계에 따르면 산업은행 자회사인 KDB생명은 지난 15일 임시주주총회를 열고 무상감자를 의결했다. 이번 감자로 자본금은 4983억원에서 831억원으로 줄어든다. 회사 측은 “재무 건전성 개선을 위한 조치”라고 밝혔다. 감자를 통해 4152억원의 감자차익이 발생하면서 누적 결손금 160억원을 해소할 수 있다. 업계에서는 KDB생명이 무상감자 후 약 1조원 규모의 유상증자를 단행해 자본 확충에 나설 것으로 보고 있다. 앞서 KDB생명은 2023년에도 무상감자를 단행한 뒤 유상증자를 실시한 바 있다. 유상증자가 완료되면 킥스(K-ICS·신지급여력제도) 비율은 현재 43.3%에서 약 120% 수준까지 높아질 전망이다.
하나금융지주 자회사인 하나손해보험도 자본 확충에 속도를 내고 있다. 회사는 지난 10일 이사회를 열고 2000억원 규모의 유상증자를 결정했다. 하나손보 관계자는 “자본 건전성을 개선하기 위한 조치이자, 향후 사업 확대를 위한 목적”이라고 설명했다. 하나손보의 2분기 말 지급여력비율(RBC)은 141%로 금융당국 권고치(130%)를 웃돌지만, 후순위채 등 차입성 보완자본 비중이 높다. 이를 제외한 ‘기본자본 기준 RBC비율’은 약 23%에 불과해, 금융당국이 새로 권고할 것으로 알려진 50%에 못 미친다. 업계에서는 부족한 기본자본을 메우기 위한 증자라는 해석이 나온다. 푸본현대생명도 지난 8월 이사회에서 7000억원 규모의 유상증자를 의결했다. 대만 푸본금융지주가 대주주인 이 회사의 증자는 오는 12월 완료될 예정이다. 카카오페이손해보험 역시 지난 9월 1000억원 규모의 증자를 마쳤다.

보험사들이 잇따라 유상증자에 나서는 배경에는 자본 확충 압박이 자리한다. 금융당국은 최근 과도한 자본성증권 의존을 지적하며, 기본자본비율 중심의 질적 규제 도입을 예고했다. 새 기준은 50~70% 수준에서 결정될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기본자본비율이 70% 미만인 생명보험사 8곳과 손해보험사 6곳 등 총 14개사가 관리 부담이 큰 것으로 파악된다. 기준을 50%로 완화해도 6개사는 여전히 규제망에 포함된다.
우호적이지 않은 금리 환경도 부담 요인이다. 한국은행은 지난해 10월 이후 완화적 통화정책 기조를 이어가고 있으며, 추가 인하 가능성도 거론된다. 업계에 따르면 금리가 0.5%포인트 하락할 경우 생명보험사의 지급여력비율은 평균 7%, 손해보험사는 5%가량 떨어진다. 금리 하락 시 자산가치가 줄고 금리위험액이 늘어나 요구자본이 커지기 때문이다. 여기에 최근 5년간 발행된 자본성증권의 콜옵션(조기상환청구권) 만기가 다가오고 있다. 2026년까지 콜옵션이 도래하는 보험사는 13곳, 2027년까지 합하면 19곳에 달한다. 만기 도래분을 상환하거나 재발행해야 하는 만큼 자본 부담은 한층 커질 전망이다.
이에 일부 보험사를 중심으로 기본자본으로 인정받는 신종자본증권 발행이 대안으로 거론되고 있다. 그러나 실제 발행이 가능한 회사는 극히 제한적이다. 신종자본증권은 투자자에게 배당을 지급해야 하지만, 보험사들은 보험계약 관련 준비금 적립 부담이 커 배당가능이익이 충분치 않기 때문이다. 현재 생명보험사의 이익잉여금 중 60%, 손해보험사는 67%가 해약환급금·비상위험준비금 등으로 묶여 있다. 특히 스텝업(상환촉진유인) 조항이 없는 신종자본증권은 상법상 ‘배당가능이익’ 범위 내에서만 배당이 가능해 우량사도 제약이 따른다. 정원하 나이스신용평가 책임연구원은 “신종자본증권 발행은 배당가능이익이 안정적으로 확보되고 시장 접근성이 우수한 일부 회사에 한정될 가능성이 높다”며 “우량사라 하더라도 배당가능이익을 안정적으로 확보하지 못하면 지속적인 발행이 어렵고, 발행 한도에도 제약이 따른다”고 분석했다.
결국 자본 여력이 충분치 않은 중소형 보험사들은 유상증자 외엔 뾰족한 대안이 없는 상황이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유상증자는 자본을 확충하는 가장 직접적이고 강력한 수단 중 하나”라며 “외부 차입, 외국인 직접투자 등은 부채 증가나 지분 구조 변화 등 복잡한 문제가 따르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유상증자가 가장 확실한 방법”이라고 설명했다. 다만 실제 증자 가능성은 각 사의 지배구조와 대주주의 자금력에 따라 엇갈릴 전망이다. 정 연구원은 “금융지주 산하 보험사는 자금 지원 여력이 충분하고 의사결정 구조가 단순해 유상증자 가능성이 높다”며 “비금융지주 계열 보험사는 계열의 지원 의지와 재무 여력에 따라 달라지며, 독립계 보험사는 계열 지원 기반이 약해 실행 가능성이 낮다”고 분석했다.
한편 업계 일각에서는 중소형 보험사에 대한 과도한 재무 불안감이 오히려 독이 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회사 재무 상태가 조금만 흔들린다는 기사가 나와도 악의적인 루머가 퍼지고 설계사 사기가 크게 떨어진다”며 “실제 자본 여력에 문제가 없는데도 ‘생존의 문제’로 받아들이며 항의가 빗발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