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른 건 고객이지, 은행 아니잖아”…5대 은행, ‘보이스피싱’ 자율배상 10% 수준

“누른 건 고객이지, 은행 아니잖아”…5대 은행, ‘보이스피싱’ 자율배상 10% 수준

기사승인 2025-10-10 10:28:29
전기통신금융사기 통합신고대응센터가 24시간·365일 운영을 시작한 17일 서울 종로구 통합신고대응센터에서 직원이 전화 상담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5대 은행의 보이스피싱 자율배상 신청 건수 가운데 배상이 완료된 비중이 10%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10일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이인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금융감독원에서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은행권 자율배상제도가 도입된 지난해 1월부터 올해 8월까지 5대 은행에 신청된 173건 중 92건의 심사가 완료됐다. 이중 배상이 이뤄진 건은 18건이다. 전체 신청 건수에 비하면 약 10%, 상담 건수(2135건)와 비교하면 약 0.8% 수준으로 배상이 이뤄진 셈이다.

신청 중 60건(34.7%)은 피해자가 직접 이체했거나, ‘로맨스 스캠(상대방의 호감을 얻은 뒤 금전을 요구하는 사기 수법)’, 중고사기 등의 이유로 심사 대상에서 제외됐다. 

은행 과실로 인정돼 배상이 완료된 18건의 피해 신청액은 6억3762만원이었지만, 실제 지급된 금액은 1억4119억원에 그쳤다. 평균 배상률은 22.1%로 나타났다. 자율 배상은 전체 피해 금액 중 통신사기피해환급법에 따라 환급받은 금액을 제외한 금액을 대상으로 한다. 

은행별로는 △국민은행 6건(8352만원) △신한은행 7건(1316만원) △농협은행 5건(4451만원) 등 이다. 우리은행과 하나은행은 배상 사례가 없었다.

고객이 은행의 배상에 불만을 품어서 분쟁 조정신청까지 간 경우는 1건뿐이었다. 이는 고객이 배상 심사 내용을 구체적으로 알 수 없고 은행의 배상률이 높지 않아 다들 결정을 수용한 것으로 풀이된다.

은행은 내부 배상심사협의회 등에서 고객 과실(0~3단계)과 은행의 사전 예방 노력 정도(0~3단계)를 종합적으로 평가해 배상 여부와 정도를 결정한다. 

예컨대 고객이 자녀를 사칭한 메신저 피싱에 속아 악성 앱을 설치하고 계좌 비밀번호 등을 직접 제공할 경우 고객 중과실(3단계)로 평가됐다. 다만 은행이 이상금융거래탐지시스템(FDS) 가이드라인을 잘 따랐으나 시나리오 운영이 일부 미흡하다는 점에서 사고 예방 노력을 1단계로 평가하고 피해 금액의 10%를 배상했다.

이를 두고 고객은 URL 클릭만으로도 과실이 크다고 보는 반면 은행의 사전 예방 노력은 FDS 고도화 등만으로도 잘 이뤄진 것으로 평가한다는 지적이 나왔다.

앞서 정부는 보이스피싱 범죄와의 전쟁을 선포하며 ‘피해자 보호’를 우선하겠다고 밝혔다. 이에 지난 8월 금융사가 보이스피싱 범죄 피해액의 일부 또는 전부를 배상하도록 하는 ‘무과실 배상 책임’을 발표했다. 당정은 연내 법제화를 추진 중이다.

이인영 의원은 “보이스피싱 피해자 상당수가 제도적 사각지대에 방치돼 사실상 구제받지 못하고 있다”며 “은행이 고객의 과실 여부만을 따질 것이 아니라 피해 예방과 신속한 배상이라는 사회적 책무를 더 무겁게 인식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정덕영 기자
deok0924@kukinews.com
정덕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