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드디어 70년간 이어져 온 노동법의 사각지대가 해소되게 됐다. 이재명 정부가 발표한 123대 국정과제 중 하나인 ‘5인 미만 사업장 근로기준법 적용’은 우리나라 전체 사업장의 약 83%(고용보험 적용사업체수, 2023년 사업체 통계), 약 250만 근로자에게 영향을 미치는 역사적 변화다. 2025년 하반기부터 단계적으로 시행되는 이 정책은 분명 환영할 만한 일이지만, 성공적으로 자리 잡기 위해서는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
노동의 가치를 공정하게 평가하는 첫걸음
그동안 5인 미만 사업장에서 일하는 근로자들은 연장·야간·휴일근로 가산 수당, 연차휴가, 부당해고 제한, 직장 내 괴롭힘 금지 같은 근로기준법의 핵심 보호를 받지 못했다. 동료 근로자가 몇 명인지에 따라 노동의 가치가 달리 평가됐다. 이번 전면 적용은 우리 사회가 노동의 가치를 공정하게 평가하는 소중한 첫걸음이다.
다만 근로자의 권리가 넓어지는 만큼 사용자의 의무도 함께 늘어나게 된다. 최저임금 인상과 원자재 가격 급등으로 이미 어려움을 겪고 있는 영세 사업주들에게는 또 다른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 인건비 부담을 감당하지 못한 영세 사업주들이 직원을 줄이거나 ‘나 홀로 사장’이 되고, 심지어 사업을 포기하는 일까지 벌어질 수 있다. 근로자를 보호하려던 법이 오히려 일자리를 줄이는 ‘보호의 역설’이 나타날 우려도 있다.
정부는 2025년 하반기부터 직장 내 괴롭힘 금지 조항을 먼저 적용하고, 2027년 상반기에는 관공서 공휴일 및 연차 유급휴가를, 2028년까지는 주 15시간 미만 초단시간 근로자에 대한 개선을 단계적으로 추진하려는 것으로 보인다.
실질적 지원체계가 성공의 열쇠
제도가 성공적으로 자리 잡기 위해서는 영세사업장에 대한 실질적인 도움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근로환경 개선 자율점검을 확대하거나, 쉽게 따라 할 수 있는 인사 노무 매뉴얼을 만들어 배포하는 방안을 생각해 볼 수 있다. 영세사업장 특성에 맞는 맞춤형 컨설팅도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직접적인 재정 지원도 검토해 볼 필요가 있다.
의무 부담을 한 번에 적용하기보다는 단계적으로 늘려가는 방법도 고려해 볼만하다. 연장·야간·휴일근로 가산 수당을 10%, 20%씩 점진적으로 올리거나, 연차휴가도 5일, 10일 순으로, 차례로 적용하는 방안이다. 속도보다는 안정적 정착이 더 중요하다.
영세 사업주에 대한 사회의 시선도 따뜻하게 살펴봐야 한다. 헌법재판소가 과거 5인 미만 사업장의 근로기준법 일부 적용에 대해 소상공인 보호 필요성과 입법재량을 이유로 합헌 결정을 내린 바 있다. 영세 사업주로서는 어제까지 아무 문제없던 일이 법 위반이 되는 상황에 놓이게 되는 것이다. 처벌 과정에서도 이런 특수한 상황을 충분히 고려해야 할 것이다.
‘적용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를 두고 다투던 시대는 이제 끝났다. 근로자의 권리 보호와 영세 사업주의 생존권 보장, 둘 다 포기할 수 없는 소중한 가치이기 때문이다. 노동계와 경영계, 정부가 함께 머리를 맞대고 진정성 있는 대화를 통해 상생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나가야 한다. 근로기준법 전면 적용은 우리 사회가 '노동의 가치'를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에 대한 소중한 시험대다. 모두를 포용하는 신중한 접근이 요구된다.
글·이재용 노무사
노무법인 천명 공인노무사
주한외국기업연합회(KOFA) HR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