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절염, 노인 우울증·자살율 높이는 초고령사회 조용한 팬데믹

관절염, 노인 우울증·자살율 높이는 초고령사회 조용한 팬데믹

글·권세광 전문병원협회 관절분야 학술위원장(연세본사랑병원장)

기사승인 2025-09-16 09:51:13 업데이트 2025-09-16 11:48:40

고령 인구가 급증하면서 65세 이상 노인이 전체 인구의 20%를 넘어선 한국에서 관절염은 흔한 질환으로 여겨진다. 하지만 통증과 활동 제한을 단순히 노화의 일부로 묻어두면, 삶의 질 저하가 깊어지고 정신적 고통이 쌓인다. 관절염은 일상생활의 기본 동작을 어렵게 만들며, 그 여파는 사회적 고립·우울증 등 정신 건강 문제로 이어진다.

최근 연구에서 관절염을 가진 고령자의 약 15%가 우울 증상을 겪는 것으로 나타났으며, 이는 관절염이 없는 노인보다 약 1.8배 높은 수치다. 또한, 국제 학술지 조사에 따르면 관절염 환자의 5.6%가 자살을 생각한 경험이 있어, 비환자군(약 2.4%)보다 두 배 이상 높은 위험이 보고됐다. 거동 제한, 만성 통증 지속 기간, 일상생활 수행 능력 등이 위험 요인으로 꼽힌다.

관절염이 있는 사람은 평형감각이 떨어지고 근력이 약해지면서 낙상의 가능성이 커진다. 특히 대퇴골 골절의 경우, 골절 후 1년 내 사망률이 약 10.7%, 85세 이상 노인에서는 약 20%까지 이른다는 정형외과 통계가 존재한다. 골절이 발생하면 장기간 침상 생활을 해야 할 경우가 많고, 이로 인해 폐렴·욕창·근감소증·우울증 등의 합병증이 잇따라 발생하면서 생존율이 떨어진다.

관절염의 악화를 막기 위해서는 통증 초기 관리와 생활습관 개선이 필수다. 관절 운동, 적정 체중 유지, 낙상 예방을 위한 환경 조성, 균형 잡힌 식사 등이 포함된다. 또한 의료체계 내에서는 정형외과적 평가와 물리치료, 보행 보조기구 등의 조기 개입이 중요하다. 단순 대증 치료보다 기능 유지와 삶의 질 회복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현재 추진 중인 ‘지역사회 통합돌봄’ 정책 등의 틀 안에서 관절염과 같은 만성 근골격계 질환은 의료 우선순위에서 밀려나는 경향이 있다. 반면, 관절염의 사회적 비용과 개인 삶의 지표 악화는 무시할 수 없는 수준이다. 건강보험 및 보건의료 정책이 관절 질환의 치료적·예방적 중요성을 반영해 필수특화과목 지정, 맞춤형 돌봄 프로그램 확대, 고위험군 대상 조기 개입 인프라 강화 등의 변화가 필요하다.

관절염은 흔하다는 이유만으로 경시돼선 안 된다. 조기 발견과 적극 관리, 정책적 뒷받침이 이뤄진다면 통증과 제한 속에서도 노인들이 보다 인간다운 삶을 유지할 수 있다. 생활 속 작지만 꾸준한 노력이, 삶의 의지를 지키는 첫걸음이다.
이찬종 기자
hustlelee@kukinew.com
이찬종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