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반도체 두뇌는 미국산”…K-반도체, 기술 자립 해법은 [K-반도체, 생존의 조건②]

“AI 반도체 두뇌는 미국산”…K-반도체, 기술 자립 해법은 [K-반도체, 생존의 조건②]

기사승인 2025-09-02 06:00:08
반도체 칩. 게티이미지뱅크 제공

한국은 한·미 통상 합의에서 3500억달러 투자 카드를 꺼내 들었지만, 정작 반도체 산업의 두뇌인 반도체 설계 자동화 툴(EDA)은 미국 의존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앞선 기사 ‘3500억달러 펀드’…한국 반도체에 남는 것은 [K-반도체, 생존의 조건①]이 보여주듯, 투자만으로는 구조적 취약성을 해소하기 어렵다. 글로벌 EDA 시장의 90% 이상을 해외 기업이 독점하는 현실에서, 기술 자립이 뒷받침되지 않는다면 ‘K-반도체’의 미래는 불안하다.

반도체 설계의 핵심 ‘EDA’ 시장의 현주소

EDA는 회로 설계부터 시뮬레이션, 검증, 테스트까지 칩 개발 전 과정을 아우르는 핵심 소프트웨어다. 특히 인공지능(AI) 반도체나 고성능 시스템반도체처럼 복잡한 칩일수록 의존도가 높아 ‘반도체의 두뇌’로 불린다.

글로벌 EDA 시장은 미국의 시놉시스, 케이던스, 그리고 독일의 지멘스가 90% 이상의 점유율을 차지하며 사실상 독점하고 있다. 영국 시장조사업체 EMIS에 따르면 글로벌 EDA 시장은 2026년 183억7000만달러 규모로 성장할 전망이다.

지난 5월 미국 상무부는 이들 기업에 중국과의 거래 중단을 요구했다가 7월 초 제한을 전면 해제했지만, 언제든 재규제 가능성이 남아 있다. 업계 관계자는 “툴 공급이 끊기면 설계 라인 전체가 멈춘다”며 “특히 중국 시장에 진출한 국내 기업들은 수출길이 막힐 위험이 크다”고 우려했다. 

EDA 의존도는 기업별로 차이가 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메모리 반도체 중심이라 직접적 의존도는 상대적으로 낮지만, 최근 두 회사와 LG전자까지 AI 기반 EDA 도입을 확대하면서 미국의 수출 통제에 노출되는 범위가 커지고 있다. 특히 반도체 설계 전문 기업(팹리스)과 시스템반도체 업체들은 EDA 툴 없이는 칩 개발이 불가능해, 규제를 강화할 경우 직격탄을 맞을 수 있다. 공급이 끊기면 설계 라인 전체가 멈추고, 칩 개발 자체가 불가능해진다. 중국 시장에 진출한 기업들은 수출길이 막힐 위험도 크다.

미국이 쥔 ‘EDA 목줄’…EUV·소재도 해외 절대 의존

EDA뿐만이 아니다. 반도체 제조 핵심 장비와 소재 역시 해외 의존도가 절대적이다. 최첨단 미세 공정에 필요한 극자외선(EUV) 노광장비는 네덜란드 ASML이 사실상 100%를 독점하고 있다. 국내 업체들이 미세 공정 경쟁력을 유지하는 데 없어서는 안 될 장비지만, 전량 수입에 의존하는 실정이다.

소재 의존도는 더 심각하다. 반도체 공정에 필요한 핵심 소재 상당 부분을 일본에서 들여오고 있다. 2019년 일본의 수출 규제로 불화수소, 포토레지스트, 플루오린 폴리이미드 등 공급이 끊기면서 국내 산업계는 큰 타격을 입은 바 있다. 당시 국산화 논의를 본격화했지만 여전히 일부 품목은 일본 의존도가 높다.

정부 대책은 ‘구호’ 수준…구체적 실행 방안은 ‘부재’

정부도 문제를 인식하고 지난해 ‘K-반도체 벨트 프로젝트’를 발표하며 설계 자립과 소부장 국산화를 강조, 지원 예산을 26조원에서 33조원으로 확대했다. 그러나 EDA 같은 소프트웨어 분야는 구체적 예산 배정이나 실행 로드맵이 부재하다는 게 업계 시각이다. 

한국반도체산업협회 관계자는 “EDA 툴 개발에는 수십 년 기술 축적과 천문학적 투자가 필요하다”며 “정부의 장기적이고 체계적 지원 없이는 구호성 발표에 그칠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혜민 기자
hyem@kukinews.com
이혜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