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올 여름 코로나19가 다시 유행할 수 있다는 경고가 나오는 가운데 제2의 팬데믹 상황이 발생할 경우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대비를 강화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다. 감염병 관리 국가 컨트롤타워 기능을 강화하고, 감염 환자를 수용할 수 있는 의료 인프라를 확충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최근 쿠키뉴스와 만난 이재갑 한림대 강남성심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코로나19와 비슷하거나 더 강력한 감염병이 창궐할 가능성에 대해 “팬데믹은 약 10~40년 간격으로 반복돼 왔으며, 최근 그 주기가 점점 짧아지고 있다”고 말했다.
팬데믹 발생 시기를 정확히 예측하는 것은 한계가 있지만, 여러 연구에 따르면 평균적으로 감염병 유행은 5~10년 주기로 돌고 있다. 국내의 경우 2003년 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사스), 2009년 신종인플루엔자(A/H1NA), 2015년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이 유행했다.
20세기 팬데믹은 모두 인플루엔자 바이러스에 의해 발생했지만, 21세기에는 코로나19가 등장하며 전 세계를 강타했다. 전문가들은 인플루엔자와 코로나19가 번갈아 팬데믹을 일으키는 식이라면 다음 팬데믹은 다시 인플루엔자일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가장 가능성이 높은 팬데믹은 ‘조류인플루엔자’(AI)다. 현재 AI가 포유류 감염을 일으키는 사례가 늘고 있는데, 사람과 사람 간 감염이 이뤄질 경우 대규모 유행으로 번질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이다.
이 교수는 “2009년 조류인플루엔자와 사람인플루엔자가 돼지에서 혼합돼 새로운 바이러스가 출현했던 전례가 있었고 최근엔 미국 젖소 감염, 유럽 밍크 대량 폐사, 남미 물범 집단 폐사 등 포유류 AI 감염이 확인되고 있다”며 “이는 바이러스가 인간에게 가까운 형태로 변이를 일으키고 있다는 의미로, 감염병 학자들은 AI가 언제 팬데믹을 일으켜도 이상하지 않은 상황이라고 보고 있다”고 설명했다.
기후 위기 등으로 인해 ‘디지즈 X’(Disease X)라고 불리는, 아직 인류가 전혀 모르는 새로운 병원체가 출현할 가능성도 있다. 이 교수는 “향후 4~5년 안에 전국적 확산은 아니더라도 메르스 수준의 피해를 줄 수 있는 감염병이 등장할 수 있다”고 예측했다.

‘제2 팬데믹’ 경고등이 켜졌지만, 대비는 미흡하다. 감염병 대응 역량 강화를 위한 준비와 투자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이어진다. 이 교수는 “감염병 대비에 충분히 투자하면 향후 대응에 드는 막대한 비용을 줄일 수 있다”면서 “평소 대학병원이 감염병 환자를 수용할 수 있도록 중환자실과 1인실을 충분히 확보하고, 의원급 의료기관에서도 안전하게 진료할 수 있는 시설을 미리 갖추면 실제 팬데믹 상황이 발생했을 때 조기 대응이 가능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글로벌 제약사처럼 백신 연구개발(R&D)에 투자를 확대해야 한다고도 했다. 이 교수는 “정부가 코로나19 이후 새로운 팬데믹에 대비하기 위해 mRNA(메신저 리보핵산) 백신 플랫폼 개발에 5000억원을 투자하고 있는데, 큰 예산이긴 하지만 글로벌 제약사들과 비교하면 적은 수준”이라며 “화이자는 코로나19 백신 개발에만 10조원 이상을 투입했고, 모더나도 매년 약 3조원을 R&D에 투자하고 있다”고 짚었다.
충분한 백신 관련 예산 및 물량 확보도 중요하다. 이 교수는 “예방접종 예산을 더 줄이거나 무료 접종 연령을 상향하는 등의 조치가 이뤄진다면 다시 큰 유행이 올 때 대응이 힘들 수 있다”라며 “연간 접종 계획을 세울 때 적어도 봄 접종까지 사용할 수 있는 백신 물량을 충분히 확보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제언했다.
공공의료 강화 필요성도 제기된다. 국회입법조사처는 지난 23일 보고서를 통해 “코로나19 당시 전담 병상으로 활용한 지방의료원이 적자 누적으로 인해 존폐 위기에 놓여 있다”며 민간 협력 기반의 공공보건의료체계를 구축하는 것이 필수적이라고 강조했다. 조사처는 “단순히 인력 증원이나 병상 확충만으로는 팬데믹 위기를 극복하기 어렵다”면서 △감염병 환자 발생 모니터링 시스템 구축 △원활한 진료를 위한 감염병 전담병원 지정 및 설치 △감염병 대응 지역사회 인프라 구축 등을 제안했다.
조사처는 “이재명 정부는 ‘공공의료 강화’를 주요 공약으로 발표했고, 정은경 보건복지부 장관도 지역·필수·공공의료 강화를 주요 과제로 제시했다”면서 “감염병 대비 국가 컨트롤타워 기능을 강화하고, 공공의료 인프라 확충 등 실질적 준비책을 마련할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