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시가 장애인 고용의 ‘일회성 수당’ 한계를 넘어서기 위해 직무 중심 일자리 실험에 나섰다. 단기 근로 위주의 기존 정책을 넘어, 교육-자격-채용으로 이어지는 구조를 통해 장애인의 지속가능한 자립을 뒷받침하겠다는 구상이다.
기존 장애인 고용 정책은 단기 일자리 제공이나 수당 지급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으나 실질적인 자립과 장기 고용으로 연결되지 못하는 구조적 한계가 지속적으로 제기돼 왔다.
서울시복지재단이 2019년 발표한 조사에 따르면, 취업장애인의 95%가 1년 이하 단기 근로에 머무렀다. 이 중 ‘1개월 이상~1년 미만’ 근로자는 54.4%에 달했으며, ‘3년 초과’ 장기 고용자는 1%에도 미치지 못했다. 경증장애인을 중심으로 한 단기 채용이 주를 이뤘다. 이는 장애에 대한 낮은 인식과 구조적 제약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라는 분석이다.
현재 서울시에 등록된 장애인은 약 39만 명이지만, 실제 취업자는 12만3000여 명으로 고용률은 32%에 불과하다. 중증장애인의 고용률은 이보다 더 낮다. 물리적 제약, 일자리 질, 사회적 인식 등 여전히 다양한 장벽이 존재한다는 지적이 이어진다.
서울시는 이 같은 현실을 개선하기 위해 ‘직무 중심’ 고용 모델을 본격 추진하고 있다. 최근에는 청각장애인을 위한 요양보호사 자격 교육, 바리스타 실무 훈련, 공공기관 행정 참여, 편의점 창업 지원 등 다양한 모델을 시범 운영하고 있다.
특히 올해 처음 도입된 청각장애인 요양보호사 양성과정은 그동안 진입 장벽이 높았던 요양 분야에 대한 새로운 진출 기회를 열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서울시는 다음 달 22일까지 청각장애인 40명을 대상으로 7주간 이론·실습 교육을 실시한다. 수료 후에는 돌봄기관과 연계한 현장 실습 기회도 제공한다. 교육 접근성을 높이기 위해 수어·문자통역과 함께 자격시험 대비용 수어 영상 자료도 지원한다.
이번 사업은 단순한 직업훈련을 넘어, 청각장애인이 돌봄 제공자로서 사회적 역할을 수행할 수 있도록 지원한다는 데 의미가 있다. 실제 현장 경험이 있는 청각장애인 요양보호사의 의견을 반영해 커리큘럼을 설계했으며, 사업 전반에는 복권기금 1억4600만원이 투입된다. 수강생 모집과 통역 지원은 청각 관련 기관 3곳이, 문자통역은 사회적협동조합이 각각 맡았다.
서비스 분야 직무 확대도 병행 중이다. 서울시장애인일자리통합지원센터는 바리스타 실무 교육과정을 별도로 운영하고 있다. 만 15세 이상 서울 거주 등록 장애인을 대상으로 한다. 신청 마감은 23일이다. 실습 중심으로 구성된 교육은 전액 무료이며, 수료자에게는 실습처 연계와 취업 지원, 수당과 수료증도 제공된다.
이와 함께 서울시는 지난해에 이어 맞춤형 특화일자리를 총 250개 직무로 확대했다. 빅데이터 수집, IT 기획 보조, 사서 보조, 매장 관리, 키오스크 안내, 장애인 보조기기 관리, 문화예술 활동 등이다. 특히 신성장 분야에는 가점을 부여해 관련 일자리 비중을 늘리고 있다.
정책 설계 초기부터 중증장애인의 참여 확대에도 방점을 뒀다. 시는 편의시설 및 온라인 콘텐츠 모니터링, 전산입력, 근로예술가 활동 등 중증장애인이 실제 수행할 수 있는 직무를 집중 발굴했고, 보조사업자와 협약을 통해 우선 채용을 유도했다. 선발 기준에서도 중증장애인에게 높은 배점을 부여해 진입 장벽을 낮췄다.
최종 선정된 참여자는 12월까지 주 20시간 근무하며 월 최대 104만원의 급여를 받는다. 올해 장애인 공공일자리는 전년보다 256개 늘어난 5116개로 확대됐으며, 이를 위해 시는 총 547억6900만원의 예산을 편성했다.
서울시는 이번 교육을 계기로 장애인의 직무 영역을 더욱 확장해 나간다는 계획이다.
조은령 서울시 장애인자립지원과장은 “사업 종료 후 수요를 파악한 뒤, 교육을 정례화하거나 확대하는 방안도 검토할 계획”이라며 “올해 중반 실제 수요가 있다는 점을 확인했고, 마침 복권기금의 가용 예산이 있어 이를 활용했다. 향후 사업의 지속 필요성이 인정되면 시 예산을 반영해 정식 사업으로 추진할 수도 있지만, 아직 구체적으로 확정된 것은 없다”고 설명했다.
이어 “청각장애인 요양보호사 양성을 시작으로, 다양한 기관과 협력해 장애인의 취업과 사회 참여 기회를 더욱 넓혀갈 수 있는 분야를 지속적으로 발굴하고 운영해 나가겠다”고 강조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