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급이 그린 지도…평양 속 작은 세계들② [곽인옥 교수의 평양 시장경제 리포트]

계급이 그린 지도…평양 속 작은 세계들② [곽인옥 교수의 평양 시장경제 리포트]

기사승인 2025-05-09 13:00:03
북한은 1994년 김일성 사망 이후 고난의 행군 시기에 수많은 사람들이 굶어 죽는 처참한 상황에 처했다. 죽음의 공포에 휩싸인 주민들은 국가 주도의 계획 경제에 의지하지 않고 스스로 목숨을 이어갈 수 있는 길을 찾아야 했다. 그렇게 북한에 자생적인 시장 경제가 싹트기 시작했다. 장마당과 상점, 고급 식당이 우후죽순 생겨나고, 돈을 굴리는 돈주(錢主)는 부를 축적하고, 새로운 형태의 뇌물 구조가 뿌리내렸다. 국제사회의 엄격한 경제제재를 받는 북한 경제를 움직이는 것은 사회주의 사상도 계획 경제도 아니고, 자생적인 시장경제다. 그러나 대다수 북한 주민은 여전히 살벌한 독재 체제의 굴레와 속박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힘겨운 생활을 하고 있다. 필자는 북한의 심장으로 불리는 평양의 경제가 어떻게 움직이는지 10년간 조사를 해왔다. 탈북자 100여명을 상대로 장기간 심층면접을 하고, 각종 자료 수집을 통해 평양의 시장경제 작동 시스템을 분석했다. 폐쇄적인 북한 내부를 자세히 연구하는 것은 매우 어렵다. 북한의 통계자료와 탈북자들의 증언 역시 어느 정도 신뢰성이 있는지 의문이다. 이런 한계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조사한 북한 사회와 경제의 현실을 공유함으로써 북한 주민들이 처한 현실과 고통을 함께 느끼고 새롭게 다가올 한반도의 미래를 고민해 보자는 취지에서 연재한다.


평양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북한)의 수도이자 정치, 경제, 문화의 중심지다. 이 도시는 철저히 계획된 도시 구조와 지역별 특성을 통해 북한 체제의 이념과 사회적 계층화를 반영하고 있다.

특히 중구역, 평천구역, 모란봉구역은 각각 독특한 역할과 환경을 갖추고 있어 평양의 도시 구조와 생활상을 잘 보여준다. 중구역은 간부들과 부유층이 거주한다. 북한의 정치적 심장으로 기능하는 곳이다. 평천구역은 산업과 상업의 중심지로 경제적 기반을 제공하는 지역이다. 모란봉구역은 재일교포와 상업 활동이 활발한 지역으로 문화적·상업적 중심지로 자리 잡고 있다. [①편에 이어]

6. 평양시 모란봉구역 주요시설과 랜드마크

모란봉구역은 평양의 중심부에 있다. 역사적, 정치적, 문화적으로 중요한 시설과 랜드마크가 밀집된 지역이다.

▶개선문 : 1982년에 건립된 북한의 대표적인 기념비다. 조선의 해방을 기념하기 위해 세워졌다. 프랑스 파리의 개선문보다 크며 높이 60m, 폭 50m로 세계 최대 규모의 개선문이다. 남쪽 기둥에는 ‘1925’와 ‘1945’라는 숫자가 새겨져 있는데, 이는 김일성이 독립운동을 시작한 해와 조국이 독립한 해를 상징한다. 내부에는 12개의 방과 엘리베이터가 있다. 외부는 진달래꽃과 다양한 조각으로 장식되어 있다.

▶천리마동상 : 북한 경제 발전과 혁신을 상징하는 동상이다. ‘천리마 운동’을 기념하기 위해 세워졌다. 천리마(천리를 달리는 말)를 타고 있는 남성과 여성을 묘사하고 있으며, 북한 주민들의 노력과 성과를 상징하는 중요한 조형물로 간주된다.

▶모란봉 : 모란봉구역의 이름을 따온 자연 지형으로, 평양 시민들이 즐겨 찾는 휴식 공간이다. 다양한 나무와 꽃들로 둘러싸인 공원 형태다. 산책로와 전망대가 있어 시민들과 관광객들에게 인기가 많다.

▶4.25 문화회관 : 대규모 정치 및 예술 행사가 열리는 주요 공연장이다. 북한군 창건일인 4월25일을 기념하여 명명된다. 내부에는 대규모 공연 홀과 회의실이 있으며, 국가적 행사나 공연이 자주 열린다.

▶우의탑 : 우의탑은 북한 평양시 모란봉구역에 위치한 기념탑이다. 한국전쟁 당시 북한을 지원한 중국인민지원군의 희생을 기리기 위해 1959년 10월25일 건립됐다. 이 탑은 조중(북중) 친선을 상징한다. 내부에는 벽화와 조각이 장식되어 있다. 탑은 천연 화강석과 대리석으로 만들어졌으며, 꼭대기에는 지름 1.5m의 오각별이 있다. 북한과 중국은 매년 이곳에서 헌화 행사를 진행해 왔으나, 최근 양국 관계가 소원해지며 별도로 추모 행사를 열고 있다.

▶모란봉극장 : 북한에서 유서 깊은 극장으로, 예술 공연 및 정치적 회의 장소로 사용된다. 전통적인 건축 양식과 현대적인 요소가 결합된 디자인이다. 북한 내 주요 연극 및 음악 공연이 열리는 장소로 알려져 있다.

▶모란봉호텔 : 소규모 호텔로, 주로 외국인 방문객이나 재일교포들이 이용하는 숙박 시설이다. 평양 중심부에 위치하여 접근성이 좋으며, 다양한 편의시설을 갖추고 있으며, 작지만 아늑한 분위기로 알려져 있다. 

▶중앙당 통전사 :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의 통일전선사업부(통전사)가 위치한 기관으로, 대남 공작 및 대외 선전 활동을 담당한다. 북한의 대외 정책 및 통일 전략을 총괄하는 중요한 기관으로 평가된다.

▶중국대사관 : 중국과 북한 간 외교 관계를 담당하는 공식 기관이다. 중국 대사관은 양국 간 외교 및 경제 협력을 위한 주요 거점 역할을 한다.

▶호위사령부 본부 : 북한 최고 지도부를 보호하는 군사 조직인 호위사령부의 본부가 위치한 곳이다. 최고 지도자의 경호와 관련된 모든 업무를 총괄하며, 철저히 보안이 유지되는 시설이다.

▶99호총국: 99호총국은 대외경제를 담당하는 기관으로 알려졌지만, 실제로는 무기 수출을 주도하는 핵심 조직이다. 이 총국은 북한의 군수산업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으며, 무기 거래를 통해 막대한 외화를 벌어들이는 역할을 한다. 99호총국은 미사일, 탄약, 장갑차, 방사포 등 다양한 군수품을 수출한다. 주요 거래 대상은 중동(이란, 시리아), 아프리카(에티오피아, 르완다), 동남아시아 국가들뿐만 아니라 러시아와 하마스 같은 단체도 포함된다.

7. 평양시 중심 구역 시장 활동 분석 : 시장경제를 가늠할 수 있는 창(窓)

평양시 중심 구역은 북한 경제의 핵심 지역으로, 다양한 경제 활동과 시장화의 흐름을 보여주는 중요한 장소다. 이 지역에서는 중앙당 직속 무역회사부터 개인 상업시설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형태의 경제 활동이 이루어지고 있으며, 북한 경제의 변화와 시장경제 요소의 확산을 잘 나타내고 있다.

● 무역회사 : 북한 경제의 중추적 역할 담당 

평양 중심 구역은 북한의 무역 활동에서 중추적인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 지역이다. 중앙당 직속 1급 무역회사는 전체 80~90%를 차지하며 국가 차원의 외화벌이와 물자 유통을 주도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대흥관리국, 727지도국 등이 평천구역에 위치해 있으며, 주요 수출입 활동을 담당하고 있다. 또한 각 성(省) 산하의 300여개 중소 규모 무역회사는 생활필수품과 소규모 공산품의 수출입을 통해 내수 시장 물자 조달에 기여하고 있다. 이러한 무역회사의 활동은 주민들의 생활 수준 향상과 경제 활성화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

● 시장: 주민들의 생계와 소비를 책임지는 공간

중구역의 중구시장에 있는 각 상품을 판매하는 상인들은 평양시뿐만 아니라 전국적으로 자기 상품의 지표에 있어서 돈주(북한 신흥 자본가 계층)로서 전국적인 도매상인으로서 역할을 하고 있다. 또한 베이징-평양의 국제 열차를 통해서 고급 의류 및 가전제품을 공급하고 있는 창구 역할을 하고 있다. 중구역에는 새벽 도매시장이 열리지 않는데 그곳에서는 김일성광장 지하에서 열리는 지하 상점에서 각 지방에서 공급되는 농토산물이 판매되고 있어서 새벽 도매시장을 대신하고 있다. 평천구역에는 현대식 시장인 평천시장과 장마당인 봉학시장이 존재한다. 평천시장에서는 다른 시장과 비슷하지만, 자동차부속품을 많이 판매하는 것이 특징이다. 봉학시장은 새벽 4시부터 약 1만명 정도의 도매상인과 주민들이 어울려 새벽도매시장이 날마다 열리고 있다. 모란봉시장도 다양한 상품이 거래된다. 특히 돈주들에 의해 운영되는 시장경제 활동이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다.

● 현대식 백화점 : 새로운 소비문화의 등장

중구역과 평천구역에는 현대식 백화점들이 운영되고 있으며, 이는 북한 내 소비문화에 새로운 변화를 가져오고 있는 현상이다. 제1, 제2 평양백화점과 락원백화점은 외국산 및 중국산 상품을 판매하며 시장가격으로 운영되고 있다. 평천구역의 민봉센터와 금별센터는 고급 식당과 상업 공간을 포함한 종합 상업시설로, 중상류층 시민들과 외국인을 주요 고객으로 삼고 있다. 이러한 백화점들은 외화를 중심으로 운영되며, 북한 내 드문 형태의 현대적 설계와 서비스를 제공하는 공간으로 평가받고 있다.

● 개인 상업시설 : 시장경제 확산의 지표

평양 중심 구역에는 개인 식당, 골목시장, 개인 상점 등이 활발히 운영되고 있는 곳이다. 예를 들어, 중구역에는 개인 식당 300개, 골목시장 15개, 개인 상점 50개가 운영되고 있으며 주민들의 생계와 소비 활동에 기여하고 있다. 이러한 개인 상업시설은 북한 경제에서 점차 확대되고 있는 시장경제 요소를 보여주는 중요한 사례다.

평양 중심구역은 북한 경제의 변화와 시장화 과정을 잘 보여주는 지역이다. 중앙당 직속 무역회사부터 개인 상업시설까지 다양한 경제 활동이 이루어지고 있다. 이는 주민들의 생활 수준 향상과 경제 활성화에 기여하고 있다. 또 현대식 백화점과 도매시장의 등장은 소비문화와 자본주의적 요소가 점차 확산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변화는 북한 경제가 전통적인 계획경제에서 벗어나 점진적으로 시장 경제적 요소를 받아들이고 있음을 시사하는 현상이다. 평양 중심 구역은 단순한 행정적 중심지가 아니라, 북한 경제와 사회 변화의 중요한 축소판이라고 할 수 있다.

8. 평양시 중심 구역의 변화 방향성

평양은 북한 체제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도시이자, 정치·경제·문화의 중심지다. 중구역, 평천구역, 모란봉구역은 각각 간부와 부유층의 권력 중심지, 산업과 상업의 경제적 허브 그리고 문화와 상업 활동의 장으로 기능한다. 도시 구조와 계층적 특성을 통해 북한 체제의 이념과 사회적 계층화를 반영하는 곳이다.

최근 평양은 시장경제 요소가 점진적으로 확산되며 변화의 조짐을 보이고 있다. 현대식 백화점과 시장, 개인 상업시설의 활성화는 북한 경제가 전통적인 계획경제에서 벗어나 새로운 경제 모델을 모색하는 과정에 있다. 그러나 동시에 환경오염, 안전 문제, 그리고 경제적 불평등과 같은 현대 도시로써 해결해야 할 과제를 안고 있다.

평양의 미래는 단순히 정치적 상징성을 넘어 경제와 문화의 중심지로 발전할 가능성을 가진 곳이다. 이러한 변화는 북한 체제와 사회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단서를 제공하며, 향후 북한의 경제적·사회적 전환을 예측하는 데 있어 중요한 역할을 할 것으로 보인다. 평양은 여전히 북한 내부 변화와 외부 세계와의 관계를 가늠할 수 있는 중요한 창으로 여겨지고 있다.
곽인옥 교수
inokkwak@hanmail.net
곽인옥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