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의사의 의료기기 사용 문제가 의료일원화 문제로 확대되는 양상이다.
의료일원화를 간단히 말하면 현재 현대의학과 전통의학으로 나눠져 있는 의료체계를 합쳐 단일화하자는 것이다. 의료정책연구소의 ‘의료일원화 관련 논의현황’(2015년 1월)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1951년 국민의료법 시행으로 한의사에게 독자적인 의료인으로서의 지위를 부여했는데 이때부터 의사와 한의사 면허로 이원화된 면허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대한의사협회는 지속적으로 의료일원화를 제기, 2004년에는 의료일원화범의료계대책위원회를 구성해 2005년 추진구상을 발표했으나 한의계의 강력한 반발로 의료계만의 논의가 그쳤다. 이러한 가운데 한의사의 현대의료기기사용 주장이 거세지며 의료일원화 논란이 불거졌고, 여기에 정진엽 보건복지부 장관이 한의사의 현대 의료기기 사용과 의료일원화를 연계해야 한다는 발언을 하며 정부정책으로 부상했다.
문제는 의료계나 한의계 모두 궁극적으로 의료일원화의 필요성에는 공감하고 있지만 일원화 방법에는 극명한 차이를 보이고 있다는 점이다. 의료계는 한의학을 부속시키는 의료일원화를 주장하고, 한의계는 의료일원화가 된다면 의료계와 한의계가 동등한 위치에 서야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즉 의료계는 한의계가 현대의학의 영역에 들어오기 위해서는 한의학이 현대의학 속으로 들어와 한다는 것이고, 한의계는 의사가 하는 업무를 할 수 있도록 해야 수평적 입장에 있어야 한다는 주장인데 추구하는 방향이 전혀 달라 가는 길은 험하기만 하다.
더욱이 의료일원화 문제는 의료계에서는 큰 논란이 되는 반면, 한의계에서는 전혀 논의조차 생각하고 있지 않은 상황이다. 대한한의사협회 김태호 이사는 “내부적으로도 이야기를 안 하고, 의협에서 생각하는 한의과대 신입생 받지 마라는 내용은 논의할 필요조차 없다”며 “한의과대 폐지는 동의할 수 없다. 상호간의 존중이 전제돼야 논의라도 시작할 텐데 없애겠다는 것은 논의할 필요조차 없다”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반면 대한의사협회는 최근까지 내부 논란이 지속되고 있는 상황이다.
특히 노환규 전 의사협회장은 추무진 의사협회장이 최근 한 행사에서 강의를 통해 “의사도 어렵고, 한의사도 어렵다. 해결을 위해서는 협진이 필요하고, 면허일원화가 필요하다”고 발언했다며 정면으로 비판에 나섰는데, 이에 대해 의사협회가 “노 전 회장의 주장은 의료계의 분열을 조장하는 발언으로 사실과 다르다”고 반박하며 의료계 내부의 갈등은 심화되고 있는 상황이다.
추 회장의 이 같은 발언은 지난해 11월 의사협회가 제안한 ‘의료일원화 추진기본원칙’에 대한 것으로 알려졌는데 의사협회는 2015년 11월19일 열린 국민의료 향상을 위한 의료현안협의체 제5차 회의에 대한의사협회와 대한의학회는 ‘의료일원화 추진 기본원칙과 의료일원화 세부추진원칙’이 담긴 의료일원화 추진 제안문(안)을 제출한 바 있다. 제안문에 따르면 △의대와 한의대 교육과정 통합 △의사와 한의사 면허를 통합하되 기존 면허자(의사, 한의사)는 현 면허제도를 유지 △의료일원화 특별위원회를 구성해 2025년까지 의료일원화 완수 등이 기본원칙으로 돼 있다.
또 세부원칙으로는 △의료일원화가 공동선언 되는 순간 한의과 대학 신입생 모집은 중지하고, 의대와 한의대 교육과정 통합 △의료일원화가 완료될 때까지 의사와 한의사는 업무영역 침범 중단 △향후 어떤 상황에서도 의료이원화제도의 부활은 일절 논의하지 않는다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당시 추 회장은 대회원 서신문을 통해 “의료일원화는 의료계의 오랜 숙원사업이라며, 이원화된 의료쳬계하에서는 국민의료비가 이중 지출되고, 의료인력이 과다 배출되는 현상은 국가사회적인 측면에서 큰 손실이라며 의과대학과 한의과대학을 통합함으로써 궁극적으로 한의사면허제도가 없어져야 한다”고 주장한 바 있다.
결국 의료계 내부에서는 의료일원화에 대한 이견이 첨예하고, 한의계에서는 논의조차 되고 있지 않지만 정부는 의료일원화에 대한 수순을 밟고 있는 듯하다. 최근 보건복지부가 동일한 병원에서 같은 날 이뤄진 의-한방 간 협진치료에 대해 모두 급여를 인정하는 시범사업 계획을 밝힌 것인데 일각에서는 의(醫)-한(韓) 간 일원화를 추진하려는 것이 아니냐는 의구심을 제기하고 있는 상황이다.
의-한방 시범사업은 7월부터 단계적으로 추진되는데 대상 질환과 행위 선정을 각 병원이 자체적으로 하되 기존 건강보험이 적용되는 급여 대상에 한정(비급여 및 투약·한약제제는 제외)하고, 참여 기관도 국공립병원을 중심으로 실시토록 했다. 이후 협진이 효과적인 질환과 의료행위를 확인하고, 적정수가를 개발해 민간까지 포함해 참여병원과 대상질환·행위를 단계적으로 확산해 나가는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국민을 위해 의-한방의 협진은 나쁠 것으로 없어 보이지만 이러한 정책이 정부의 일방적인 의료일원화로 가는 길이라면 종국에는 무의미한 제도를 하나 더 양산해 의료전달체계의 혼란을 가중시킬 수 있음을 염두에 둬야 할 것으로 보인다.
조민규 기자 kioo@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