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본 관리에 부담을 느끼고 있던 국내 금융지주들이 미국의 기준금리 인하 가능성이 커지면서 안도하는 분위기다. 금리 인하 기대에 원·달러 환율이 1370원대까지 떨어져 외화자산 관리에 대한 부담을 덜었기 때문이다.
17일 서울 외환시장에 따르면 전날 원·달러 환율의 주간 거래 종가(오후 3시30분 기준)는 전거래일 보다 10.1원 내린 1378.9원으로 집계됐다.
환율은 5개월간 100원 이상 오르내리는 큰 변동성을 보이고 있다. 올해 2분기 초에는 미국발 상호관세 불확실성과 국내 정치 불안이 겹치며 1480원대까지 치솟았다가, 6월 대선 이후 1350원대로 내려갔다. 이후 한미 관세 문제가 부각되면서 1380~1400원 안팎을 오가는 상황이다. 지난달 21일에는 1400원을 넘어섰다.
금융지주는 급등하는 환율에 민감하다. 환율 상승이 금융지주의 자본 건전성에 부담을 주기 때문이다. 원·달러 환율이 오르면 보유한 외화 자산의 원화 환산액이 불어나 위험가중자산(RWA)이 확대된다. RWA란 은행이 빌려줬거나 투자한 돈을 위험도에 따라 가중치를 적용해 계산한 수치다. RWA가 늘면 보통주자본비율(CET1)은 낮아진다. CET1 비율은 금융사의 손실 흡수 능력을 나타내는 지표로, CET1 비율이 높을수록 손실 흡수 능력이 좋다는 뜻이다.
통상 금융권은 환율이 10원 오를 때 5대 금융지주(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의 CET1 비율이 0.01~0.03%포인트 하락할 것으로 추산한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환율이 크게 출렁이면 대체투자 등 자산 운용이 까다로워지고, CET1 비율 유지에도 압박이 된다”고 말했다.
환율 변동성은 ‘밸류업(기업가치 제고)’ 전략에도 영향을 미친다. 국내 금융지주들은 ‘코스피 5000’ 달성을 위한 밸류업 전략의 일환으로 CET1 비율을 13%대 수준으로 유지하기 위해 총력을 기울이는 중이다. 현재 금융당국은 은행을 자회사로 둔 금융지주에 CET1 비율을 12% 이상 유지하도록 권고한다. 안정적인 CET1 비율은 배당 확대 등 주주환원 정책의 전제 조건이다. 그러나 환율 급등으로 CET1 비율이 떨어질 경우 자본 확충이나 이익 유보 등 보수적 대응이 불가피해, 계획한 밸류업 추진 속도가 늦어질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관건은 향후 환율 흐름이다. 이번 주 예정된 미국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회의가 최대 변수로 꼽힌다.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정책 방향이 향후 원·달러 환율을 좌우할 것으로 보인다. 일단 시장에서는 이번 FOMC에서 기준금리 인하 가능성이 유력한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다만 9월 FOMC의 기준금리 인하 기대에도 원·달러 환율 하락세가 기대에 못 미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연준의 완화적 기조가 달러 약세를 이끌 수 있지만, △관세로 인한 인플레이션 우려 △유로존 정치 불안 △일본 정국 변수 등 대외 불확실성으로 원화 약세 압력이 여전히 강할 수 있어서다.
이진경 신한투자증권 연구원은 “16~17일(현지시간) 열리는 미국 연방공개시장위원회 FOMC회의에서 기준금리가 인하된다면 달러 하방 압박이 커져 원·달러 환율이 하락할 가능성이 크다”면서도 “다만 프랑스발(發) 정치 불확실성이 잔존하고 있어 하락 속도는 완만할 전망”이라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