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민 국방장관, 방위산업 출혈 경쟁 중단 특단 조치 서둘러야![박진호의 아웃사이트]

문민 국방장관, 방위산업 출혈 경쟁 중단 특단 조치 서둘러야![박진호의 아웃사이트]

국내 전문화 및 계열화 부활로 해외 수출 경쟁력 제고 박차

기사승인 2025-07-30 17:08:53

64년 만의 첫 문민 장관으로 취임한 안규백 국방장관이 이재명 정부 출범 이후 첫 방산 수출 계약으로 9조원 규모에 달하는 K2 전차 폴란드 수출 계약 체결을 위해 출국 예정이다. 보다 혁신적인 국방 문민화 및 방위 산업 국내외 경쟁력 제고 등에 대한 안규백 장관의 향후 리더십에 대해 많은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방위산업 현안 중 가장 시급한 것은 “한국형 차기구축함(KDDX) 사업”을 정상화시키는 것이다. 지난 윤석열 정부는 사업추진 방식에 대한 갑론을박에 매몰되어 장고 끝에 미봉책에 그쳤고 사업을 둘러싼 혼란만 가중시키는 결과를 자초했다.

안규백 장관은 담대한 국방혁신 뿐만 아니라 혁신적 방위산업 정책 추진에 있어서 과거 어느 장관 보다도 자유롭다. 국내 방산 기업들은 국내 방위 산업의 고도화 뿐만 아니라 해외 경쟁력 강화를 동시에 제고시키기 위해서 안규백 장관의 새로운 정책적 리더십을 고대하고 있다. 정부가 국내 사업 수주에 있어 국내 기업들의 출혈 경쟁을 개선시킬 수 있는 특단의 정책적 조치 없이 글로벌 경쟁력을 강화를 지원한다는 것은 몽상에 불과하다. 더군다나, 북미, 중동, 유럽 등지에서 방위산업 정책 및 전략 변화를 둘러싼 불활실성이 가중되고 있어 시간과 상황이 녹록치 못하다. 국내 출혈 경쟁을 개선하기 위한 하나의 해결책으로 기업들은 폐지된 ‘전문화 및 계열화 제도’의 부활을 제시하고 있다. 이재명 정부에서 특단의 조치가 마련되지 않는다면 오늘날 붕괴된 미국 조선업이 국내 방위 산업의 미래 모습이 될 것이다. 

한화오션과 HD현대중공업은 지난 정부에서 종지부를 찍지 못한 KDDX 사업 수주를 위해 또 다른 결전을 준비하고 있다. 미국은 세계 최강의 해군력을 보유하고 있지만, 역설적으로 조선업은 역사상 최악의 상황에 직면하고 있다. 미국 조선업 붕괴를 초래한 가장 심각한 원인은 미국 조선소의 경쟁력과 자생력 약화이다. 1980년대 초에는 300여개에 달하던 조선소가 지금은 10여개에 불과하다. 국내 방위 산업도 지금과 같은 출혈 경쟁 시스템이 지속된다면 종국에는 승자가 독식하는 시기가 멀지 않았다. 최근 국내 업체들이 해외 수출 경쟁력 확보 명분을 앞세워 국내 연구 및 체계개발 사업에 있어서 그간 유지된 업체간 협업 네트워크를 스스로 붕괴시키고 있다. 여기에 설상가상으로 업체간 첨예한 경쟁을 사전에 예방하거나 건설적 대안을 제시하지 못하는 정부는 사실상 업체간 출혈 경쟁 확산을 방기하는 것이다. 지금의 악순환이 지속된다면 K-방산의 국내외 경쟁력 약화는 너무나도 자명하다.

일례로, 방위사업청은 지난해 KDDX 사업을 둘러싼 국내 업체간 경쟁이 극에 달했을 때 느닷없이 해외 함정 수주 경쟁력 제고를 위해 한화오션 및 HD현대중공업의 ‘원팀’ 협업 체제 강화를 위한 양해각서(MOU) 체결을 주도했다. 당시 이러한 정책적 노력은 전형적인 생색내기 ‘전시 행정’에 불과했다. 자신들의 정책 결정에 따라 사업의 향방이 결정되는 국내 사업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하면서 방위사업청이 아닌 기업이 전적으로 주도해야 할 해외 사업을 관리하겠다고 자처한 것은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어렵다. 결국, 사업 해결을 위한 본질적인 노력이 부족했고 임기응변식 대응으로 상황만 악화시켰다.

오늘날 방위산업 성장의 주춧돌은 1983년 최초 도입된 “방위 산업 전문화 및 계열화 제도”로 근간이 마련되었다. 그러나, 이 제도는 특정 기업에게 독점적 지위를 부여해 공정 경쟁을 제한한다는 이유로 2008년에 폐지되었다. 이후, 국내 방산기업들의 자생력이 크게 향상되어 K-방산 기술 첨단화 및 가격 경쟁력이 빠르게 진전되었고 이젠 글로벌 시장에서 주목받는 K-방산 시대가 도래했다. 국내 방위산업 시장에서 중심적 역할을 하는 기업들은 더 이상 국내 사업만으로는 유지가 불가능할 정도로 기업 규모가 성장했고 이 기업들의 협력업체 역시 새로운 먹거리를 필요로 하고 있다. 결국, 국내 방산시장이 안정적으로 유지 및 발전되지 못하면 해외 수주 경쟁력 강화를 위한 과도한 기회비용을 국내에서 지출하게 된다. 보다 선진화되고 지속가능한 전문화 및 계열화 제도 도입을 통해 국내 기업들이 국내에서 출혈 경쟁을 멈추고 글로벌 경쟁력 강화를 위한 다각적 노력에 보다 집중할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되어야 한다.

현행 ‘방위사업관리규정’을 면밀히 살펴보면, 전문화 및 계열화 제도는 비록 폐지되었지만 그 잔재는 ‘방산물자 지정’ 및 ‘관ㆍ도급 분류’ 등의 형태로 여전히 존재한다. 방위사업청이 이 같은 규정만이라도 그간 적극적으로 활용했으면 지금과 같은 과도한 출혈 경쟁 환경은 최소화시킬 수 있었다. 그러나, 방위사업청은 사업 감사 등의 이유로 소극 행정을 울며 겨자먹기식으로 반복하고 있다. 예를 들어, 방산물자 지정 여부를 판단하는 핵심 기준인 경쟁 가능성과 관련하여 방위사업청은 검증된 객관적 기준 조차도 적용하지 않고 있다. 또한 관ㆍ도급 분류에 있어선 관급 장비 지정으로 체계종합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정부의 귀책 사유 등에 대한 위기 관리에도 소극적이어서 때로는 사업추진 본질이 변질되고 있다. 최근 ‘214급 잠수함 성능개량’ 우선협상대상자 선정이 대표적인 사례이다. 만약 방위사업청이 특정 업체가 보유하고 있는 검증된 소나체계 기술을 ‘도급’이 아닌 ‘관급’으로 지정했다면 보다 공정한 체계통합업체간 경쟁 구도가 형성되었다는 것은 매우 상식적인 판단이다.

‘214급 잠수함 성능개량사업’ 추진시 조선소를 대상으로 제안요청서를 배부한 것은 성능개량 대상 장비 및 체계 전체를 통합하는 조선소의 검증된 체계통합 능력을 가장 우선시하겠다는 정책적 의도를 반영한 것이다. 국내에는 특정 업체를 제외하고는 대안도 없는 소나체계 기술 등을 조선소 책임하에 도급으로 선정하라는 것은 ‘선정 권한은 없고 책임만 묻겠다’는 것이나 다름없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특정 장비 및 기술 공급 업체가 사업 승패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면  체계통합능력의 검증이 최우선시되어야 하는 사업 취지를 무색하게 한 것이기 때문에 정책적 책임이 뒤따라야 한다.

방위사업청은 과거 하이브리드 호위함 건조 사업 추진 과정에서 핵심 장비인 개스터빈 선정에 있어 부적절한 관ㆍ도급 분류 관행으로 감사원의 지적을 받아 관ㆍ도급 분류 체계를 개선한 바 있다. 방위사업청이 보다 적극적인 행정을 펼치지 않으면 국내 방산 기업들은 안보 국익 보다는 기업의 사익을 앞세워 사업별로 기업간 이합집산을 반복할 것이다. 현재 진행중인 여러 사업에서 이미 이 같은 무질서와 혼란이 현실화 되고 있다. 

방위산업 전문화 및 계열화 제도가 폐지된 지 20년 가까이 지나오며서, 국내 방산 기업들은 일부 분야를 제외하고는 차별화된 기술 경쟁력과 전문성을 보유하고 있다. 정부가 방위 산업의 전문화 및 계열화를 위해서 보다 책임있는 역할을 선제적으로 감당한다면, 기업들은 승자 독식이 아닌 공생을 위해 사업 분야별 통합 및 조정에 나서게 될 것이다. 이처럼 정부와 기업이 동시적 변화를 추구한다면 방위산업이 국가 신성장 동력 뿐만 아니라 글로벌 경쟁력을 혁신적으로 제고시키는데 마중물을 마련하게 될 것이다. 국가를 제외하고는 무기체계의 대체 수요자가 없고, 수십년에 달하는 무기체계의 수명주기 등의 특수성을 고려할 때 안규백 국방 장관의 담대한 결정을 기다릴 수 있는 시간이 부족하다.

박진호 전 국방부 정책자문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