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많은 이들은 DMZ(비무장지대)에서 저마다의 느낌을 갖는다. 한국 전쟁 이후 1953년 체결된 정전 협정에 따라 남북한의 군사 충돌을 방지하기 위한 완충지대로 조성된 이곳이 전해주는 느낌이 다양하기 때문이다. 올여름 더위가 절정을 이룬 25일 찾은 경기도 파주의 캠프 그리브스는 어느 정도 그 느낌을 정리할 수 있게 해주었다.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후원회가 마련한 DMZ 견학단의 일원으로 참여해 방문한 캠프 그리브스는 머릿속에 온갖 상념을 펼치면서 가슴 깊숙한 곳으로 뭔지 모를 감흥에 젖어들게 했다. 안보관이나 국가관이라든지 하는 상투적인 것이 아닌 색다른 감흥이었다.
캠프 그리브스는 국내 가장 오래된 미군기지 중 한 곳으로 미군이 1953년부터 50여 년간 주둔했던 곳이다. 2007년 우리나라로 반환된 이후 경기도가 2013년 평화·안보 체험시설로 개조한 이곳은 미군이 사용했던 건축물을 원형 그대로 활용하고 있다. 2016년 문화재생사업으로 리모델링한 10개 전시관이 운영되고 있다.
전담 해설사의 설명을 들으며 전시관을 차례로 도는 중 민족상잔의 6·25 전쟁과 유엔군 참전, 정전 협정과 남북한 대치 상황 등이 머릿속에서 파노라마처럼 이어졌다. 그러면서 국군은 물론 유엔군이라는 이름으로 참전해 목숨을 바친 수많은 외국 젊은이들의 외마디 울부짖음이 들리기도 했다. 학도병으로 전장에 뛰어든 한 소년이 어머니께 보내는 절절한 편지글은 한동안 가슴을 먹먹하게 했다.

“어머니! 나는 사람을 죽였습니다”는 글로 시작된 편지에는 처절한 전장에서 마주하는 한 소년의 슬픔과 아픔, 외로움과 두려움이 생생하게 전해졌다. “이 복잡하고 괴로운 심정을 어머니께 알려드려야 내 마음이 가라앉을 것 같습니다”라는 그의 고백에서는 지금 이 땅에서 살고 있는 사람으로서 한없는 고마움과 미안함을 느끼게 했다.
탄약고를 개조해 만든 미디어아트 전시관은 분단된 한반도에서 살고 있는 이들에게 DMZ와 평화의 가치를 새삼 깨닫게 했다. ‘이 선을 넘지 마시오’라는 글귀의 선을 따라 어두웠던 분단의 역사에서 밝은 평화와 희망의 에너지가 가득 찬 세상으로 나아가게 한다는 작가의 의도에 특이한 영상과 음향, 향기가 어우러져 한껏 몰입도를 높였다.
거기다 정전협정서를 비롯해 6·25 전쟁 당시 사용된 각종 군수품과 남북한 주민들의 생활상을 촬영한 사진 등 전쟁의 참상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유물들은 좋은 구경거리로 손색이 없었다. 드라마 ‘태양의 후예’ 촬영 장소라는 사실을 알게 되니 더욱 흥미로웠다.
전시관을 돌고 내려오는 길에 누군가의 ‘소감이 어떤가’ 하는 물음에 쉽게 답을 못하다 결국 ‘복잡미묘한 감정’이라는 애매한 대답을 할 수밖에 없었다. 실제로 그곳은 보고 배우는 것을 넘어서는 ‘느끼고 깨닫는’ 뭔가를 담아주었다. 최전방 철책에서 불과 2㎞ 아래에 이런 소중한 곳이 존재한다는 사실이 고맙기도 했다.

캠프 그리브스에 앞서 찾은 김포의 애기봉은 분단된 조국의 현실을 새삼 느끼게 해주었다. 6·25 전쟁 당시 남북이 치열하게 전투를 벌였던 ‘154 고지’라는 이곳 전망대에서는 굳이 망원경의 힘을 빌리지 않더라도 강 건너 북한 땅을 바라볼 수 있었다. 망원경을 이용하면 북한 황해도 개풍군 일대 주민들의 생활 모습도 볼 수 있다고 한다. 웬만한 수영 실력의 소유자라면 충분히 건널 수 있을 것 같은 지척에 있지만 그저 바라만 볼 수밖에 없는 현실이 안타까웠다.
이곳은 매년 성탄절이면 신문 1면을 큼지막하게 장식하는 대형 크리스마스 트리로 유명한 곳이기도 하다. 내려오는 길에 본 한국 전쟁영화의 고전이자 걸작 ‘돌아오지 않는 해병’의 촬영지라는 팻말에 왠지 모를 정감이 느껴졌다. 거기다 ‘애기봉(愛妓峰)’이라는 이름이 병자호란 당시 한 장수와 기생의 로맨스를 담은 설화에서 비롯됐다는 설명이 흥미를 더했다.

어쨌든 불볕 더위를 뚫고 애기봉과 캠프 그리브스를 둘러본 DMZ 견학은 안보 관광 이상의 특별한 행사였다. 단지 보고 배우는 것을 넘어서 감동까지 느낄 수 있었다. 40여 명의 견학단 참여자들도 “훌륭하고 멋진 체험이었다”고 입을 모았다.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후원회장으로서 행사에 동참한 경기도의회 오준환 의원은 “고양시와 김포시, 파주시, 연천군 등 경기도 DMZ를 지역의 안보와 관광, 생태 자원으로 보존하고 활용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라며 “오는 9월 개막될 DMZ국제다큐영화제도 성공적으로 치러질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