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돈 내면 관세 인하”… 韓, 농산물까지 ‘백지수표’ 내미나

트럼프 “돈 내면 관세 인하”… 韓, 농산물까지 ‘백지수표’ 내미나

미국산 소고기까지 포함… ‘민감 시장’ 개방 압력 현실화
美, 5500억 선례 들며 관세 인하 조건 제시
정부, 대응 전략 재검토

기사승인 2025-07-26 06:00:07 업데이트 2025-07-26 09:57:21
24일 미국 워싱턴에서 연방준비제도 공사 현장을 방문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팀 스콧 공화당 상원의원(사우스캐롤라이나주)이 공사 현장을 바라보고 있다. AP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일본의 5500억 달러 선투자를 거론하며 “돈을 내면 관세를 낮춰주겠다”고 공개 발언하자, 정부가 대미 통상 협상 전략을 전면 재검토하고 나섰다. 특히 미국산 소고기 수입 확대 등 민감한 농축산물 시장 개방 요구가 수면 위로 떠오르면서, 실질적 통제권도 없이 대규모 투자만 강요당하는 ‘백지수표식 합의’ 우려가 커지고 있다.

대통령실은 25일 강훈식 비서실장 주재로 긴급 통상대책회의를 열고, 미국 측과의 협상 전반을 정밀 점검했다. 김용범 정책실장은 회의 직후 “8월 1일이 공식 협상 시한이며, 그 이후로는 데드라인이 설정돼 있지 않다”고 밝혔다. 김정관 산업부 장관과 여한구 통상교섭본부장은 미국 현지에서 지나 러몬도 상무장관, USTR 대표 등과 자동차·반도체·조선 분야의 관세 완화와 투자 조건을 놓고 막판 협상을 이어가고 있다.

정부는 삼성, 현대차, LG 등과 총 1000억 달러 규모의 투자안을 조율해왔지만, 미국이 일본과의 합의를 기준선으로 삼으면서 협상 구도가 불리하게 전개되고 있다. 특히 투자처와 방식, 수익 분배 등을 미국이 일방적으로 설정할 경우, 한국은 실질적 협상력 없이 자금만 제공하는 ‘서명용 수표’를 쥐여주는 셈이 될 수 있다는 경고가 커지고 있다.

김 실장은 “조선, 반도체 등 전략 제조업 분야에서 상호 협력의 중요성을 재확인했으며, 8월 1일 이전 상호 호혜적인 타결 방안을 도출하겠다는 의지를 미국 측과 공유했다”고 밝혔다. 우리 측은 자동차 등 핵심 품목의 관세 인하를 강력히 요청한 것으로 전해졌다.

문제는 협상 테이블 위에 농산물까지 올랐다는 점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24일(현지시간) 자신의 SNS ‘트루스소셜’에 “호주에 매우 많은 소고기를 판매하게 될 것”이라며 “미국산 소고기를 거부하는 국가들은 통보받았다”고 경고했다. 이를 두고 미국이 자국산 소고기 수입에 비협조적인 국가에 전방위 압박을 시작한 신호라는 분석이 나온다.

김 실장 역시 “협상 품목에 농산물도 포함돼 있다”고 공식 확인했다. 대통령실이 민감한 농축산물까지 협상 대상임을 인정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워싱턴DC 연방준비제도(Fed) 청사 개·보수 현장을 방문한 자리에서 “다른 나라도 돈을 내면 관세를 낮출 수 있다”고 거듭 밝혔다. 그는 일본과의 무역 합의를 언급하며 “일본은 대출이 아니라 ‘사이닝 보너스’ 형식으로 5500억 달러를 선불로 냈고, 그 대가로 관세를 일부 인하해줬다”고 말했다. 이는 한국에도 동일한 방식을 요구할 수 있음을 강하게 시사한 발언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정부 관계자는 이날 쿠키뉴스와의 통화에서 “전략산업 협력이라는 명분 아래 우리 핵심 산업과 민감 품목이 과도한 부담을 지지 않도록 균형 있는 협상이 중요하다”며 “국익을 최우선으로 고려하면서 신중하게 접근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승은 기자
selee2312@kukinews.com
이승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