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 금융 중심지가 3곳 있다. 여의도와 명동, 그리고 선릉이다. 여의도는 은행·증권 등 금융기관은 물론 여러 공공단체가 집대성한 곳이다. 명동과 을지로는 KEB하나·기업·우리 등 대형 은행들이 터를 잡고 있다. 선릉은 저축은행과 캐피탈·대부업체의 주무대다.
기온이 영하권을 맴돌던 4일 오후 기자는 선릉에 있었다. 선릉역 일대에 저축은행과 대부업체가 많다는 정보를 입수하고 현장을 둘러보기로 한 것. 마침 근처에서 열린 금융위원회 주관 청년창업 간담회를 들른 직후였다. 영업점은 드문드문 있었지만 고개만 돌리면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었다. 가구거리나 조명거리를 연상시키는 선릉역 ‘저축은행 거리’를 걷고 왔다.
저축은행은 의외로 많았다. 테헤란로에 저축은행이 정말 수두룩했다. 역 주위로 반경 1km 이내에 은행이 10개가 넘었다. 지점이 대부분이지만 본점도 있었다. JT친애저축은행·NH저축은행·더케이 저축은행 본점이 역에서 5분 거리에 있었다. JT친애와 NH저축은행은 같은 건물을 사용하고 있었다.
기자는 선릉이 저축은행 성지로 변한 이유가 궁금해졌다. 저축은행 측에서도 정확한 이유를 설명해주지 못했다. 하지만 지역 특성상 인구가 많고, 수신금리가 높은 장점 때문에 목돈을 만들려는 사람들이 저축은행으로 몰리면서 자연스럽게 저축은행 군이 형성됐을 것이라는 의견이다. ‘돈의 흐름’이 많다보니 같은 업종끼리 시너지를 발휘할 수 있다는 점도 이유로 들었다.
하지만 저축은행이나 대부업이 선릉에 몰린 배경은 명확하지 않다. 다만 유동인구가 많고 접근성이 높아서라는 주장에 무게가 쏠린다. 선릉역은 직장인 상권이 특히 발달한 지역이다. 직장인 하루 유동인구가 40만명 이상으로 한때 국내 2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물론 지금도 그에 버금가는 인구수를 자랑한다. 선릉은 삼성동과 역삼동 상권을 잇는 길목이기 때문이다.
이를 반영하듯 지금도 선릉역 주위에는 저축은행 말고도 캐피탈과 대부업체도 많다. 캐피탈 보다는 대부업체가 더 눈에 띈다. 영업중인 곳으로 확인된 곳은 13군데 정도다. 강남·역삼역이 초창기 대부업 1번지였다는 것이 업계 중론이다.
기자가 이 거리를 찾았던 이날도 저축은행 거리에 이웃이 또 생겼다. HK저축은행도 선릉 성원타워로 사옥을 이전했다. 사명도 에큐온으로 바꿨다. 8번 출구로 나와서 조금만 걸어 올라가면 오른쪽 건물 벽면에 ‘에큐온 저축은행’이라는 글자가 큼지막하게 적혀 있다. 건물 4개 층을 사무실로 쓴다.
이사를 마친 영업점은 깨끗했다. 홍보가 덜 된 건지 방문객이 적은 것이 흠이었다. 은행 측은 신논현 사옥이 낡아 이사를 왔다고 설명했다. 경쟁사가 많은 선릉으로 ‘굳이’ 자리를 옮긴 이유에 대해서는 컨설팅 업체 소개를 받았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한편 최근 관련 업체들은 선릉역을 벗어나 외부로 빠져나가는 추세다. 이와 관련 업계 관계자는 “예전에는 대출 심사를 받을 때 반드시 대면으로 해야 했지만 요즘은 비대면 영업 위주로 바뀌면서 사람들 왕래가 줄었다”며 “영등포나 노원 지역으로 빠져나가고 있다”는 설명했다. 실제 부유층이 많이 거주하는 판교나 분당 등에도 저축은행이 몰려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JT저축은행 본점도 분당에 있다.